매일신문

"바퀴 방역? 그냥 때려 잡으세요" 반복되는 어린이집 비위생

대구, 어린이집 상당수 1년에 단한번도 점검 안받아…보육교사 업무과중,

대구의 특정 어린이집에서 썩은 달걀을 간식으로 주고 썩은 칫솔로 양치질을 시켰다는 '인터넷 고발' 이 잇따르면서 어린이집을 비롯한 보육시설의 위생 상태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크다.

위생 관념이 낮은 종사자들과 열악한 시설, 형식적인 점검 등으로 언제든지 재발할 우려가 크다.

◆바퀴벌레 기어다녀도 "그냥 잡아라"

보육교사 박희정(27·여·가명) 씨는 대구 동구의 한 유아보육시설에서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방안과 급식을 만드는 주방에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수차례나 목격했다. 박 씨는 시설 원장에게 방역업체에 의뢰하길 권했지만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방역하려면 돈이 드니까 그냥 선생님들이 잡아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던 것. 박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바퀴벌레를 잡았지만 찜찜한 기분은 영 가시질 않았다"며 "바퀴벌레도 외면하는 어린이집에서 칫솔이라고 신경을 썼겠느냐"고 푸념했다.

유아보육시설 종사자들은 어린이집 위생 문제가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설 원장이나 보육교사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하루 종일 부모들의 눈을 벗어나 있는데다 관계기관의 점검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 특히 6세 미만 유아들의 경우 위생 관념이 약해 지저분한 먹을거리나 환경에 놓여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아이들의 칫솔도 부모가 3개월마다 새것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그냥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건 아주 흔한 경우"라고 털어놨다.

보육 복지보다는 영리에 더 목을 매는 일부 어린이집 운영자들에 대한 비판도 적잖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부족한 수익을 보육교사 임금이나 원생 급식비를 줄여서 보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구시내 한 민간 어린이집 교사는 "식재료를 이용해 원가를 줄인 뒤 차액을 남기는 것에 대해 교사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라며, "고용주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힘들고, 교사들끼리 아이들 걱정하며 눈물짓기도 한다"고 말했다.

◆형식적인 단속과 효과 없는 처벌

행정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각 기초단체는 연간 1차례 이상 시설 점검을 해야하지만 상당수 보육시설은 1년에 단 한 차례도 점검을 받지 않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시와 각 구·군이 지난해 점검한 보육시설 수는 전체 시설 1천533곳 중 67%인 1천27곳에 불과했다. 특히 잇따라 위생 문제가 불거진 북구의 경우 354곳 중에 절반도 안 되는 145곳(41%)을 점검하는 데 그쳤다. 이는 대구시내 8개 구·군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보육시설이 가장 많은 달서구(415곳)의 점검률인 82%의 절반 수준이다. 동구도 점검률이 52%에 불과했고, 서구 59%, 수성구 60% 등이었다. 그나마 점검을 받은 보육시설도 10곳 중 3곳꼴인 327곳이 규정 위반으로 적발됐다. 수성구의 한 가정보육시설 보육교사는 "구청에서 1년에 한 차례 정기점검을 나오지만 화장실과 주방 등 위생상태를 점검하는 게 전부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점검 횟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적발되더라도 처벌 규정이 약한데다 부모들이 적발 여부를 알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위생 상태 불량이나 유통기한을 경과한 식품이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는 게 전부다. 동구의 한 가정보육시설 교사는 "시정명령은 권고사항일 뿐 특별히 불이익을 받는 제재는 아니다"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담당자 1명이 수백여 곳의 보육시설을 점검해야 할 정도로 인력이 모자라 제대로 된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질 높이고, 인가조건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열악한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시설 인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육교사들이 저임금과 과중한 업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면서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현주 영진전문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교사 급여가 월 100만원도 안 될 정도로 처우가 열악한 반면 기본적인 아동 보호와 양육 외에도 교육용 교재까지 직접 만들어야 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어 아동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 1, 2명을 두는 정도인데 급여도 작고 일이 힘들다 보니 교사가 자주 바뀐다"며 "부족한 교사 인원에 아이들은 많다 보니 꼼꼼하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영리에 눈이 먼 시설장들이 자격 정지를 당한 뒤 다시 문을 여는 등 폐해도 드러나는 만큼 인가 조건을 강화하고 과당 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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