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서해 조개구이

이번 여행은 충청남도 바닷가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서해 쪽은 생선보다 조개가 판을 치는 고장이다. 그쪽으로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은 "맨발로 바다에 들어가 조개를 잡아 연탄 화덕구이를 해 보지 않고는 서해바다를 봤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조개구이는 그냥 별미일 뿐 생선회보다는 맛이나 급수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성싶어 이번 여행의 먹을거리 파트 중 하나로 조개구이를 끼워 넣기로 했다. 출발 전날 조개구이 장비를 챙기는데 생각은 벌써 서해 바다로 달음질쳤는지 입에선 빌리본 악단이 연주한 '진주 조개잡이'(Pearly shells)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거려졌다.

요리의 필수 덕목은 격식이다. 첫째는 불(연료), 둘째는 연장(솥 또는 냄비), 셋째는 그릇, 넷째는 향신료다. 조개구이는 연탄불도 그런대로 무난한 편이지만 참숯화덕보다는 격이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 팀은 웨버(weber)라는 미국제 구이 전용 화덕과 참숯을 준비하고 손잡이 달린 석쇠를 준비했다. 그리고 조개에는 바닷물이란 천연 간이 배어 있긴 하지만 여행도반들의 별난 입맛을 위하여 통후추 와사비 제피 참기름 천일염 등 다양한 향신료를 챙겨 넣었다.

우리 다섯 사람은 충청남도 바닷가 유람에 나선 김에 쉽게 가 볼 수 없는 방조제를 일일이 한 번 훑어보기로 작정하고 떠났다. 이번 2박3일 여행 중에 지나가야 할 방조제는 모두 일곱 개쯤이었다. 나열하면 삽교천, 석문항, 대호, 서산A지구, 서산B지구, 남포, 부사방조제 등이었다.

낯선 지역에서 숙소를 정한다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모텔이든 펜션이든 간에 우선 깨끗해야 하고 가격이 수준에 맞아야 한다. 우리 팀은 여행 기간을 비수기 주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성수기 주말 숙박비는 주중보다는 배 정도 비싸다. 특히 여름철 이름난 해수욕장이나 섬에는 방값이 부르는 게 값이다.

팀원 중 에누리를 잘하는 친구는 전화로 가격을 대충 알아본 후 주인을 만나면 "경로우대가 되느냐"고 묻는다. 그는 지하철은 물론 국립공원의 경로 공짜 우대를 들먹이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며 지공법인(지하철 공짜 손님) 간부라고 큰소리친다. 펜션 주인은 어이가 없어도 유머러스한 엄살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차린 생선회 식탁에 주인어른을 초대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보상한다. 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첫날 머문 충남 당진군 석문면 장구항리의 '1박2일 펜션'(041-353-9511)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로우대를 받아 6만원에 자고 일어나니 아침 해가 '좀 더 깎지 그랬어'하는 투로 빙긋 웃었다. 엊저녁에 남은 밥을 라면 국물에 말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홍성 남당리 어시장에 들렀더니 바다에 흉년이 들었는지 장꾼들로 붐빌 시간인데 분위기는 파장이다. 자연산 홍합과 개조개를 사서 꽃지 해수욕장 쪽으로 달렸다. 캘린더에 나오는 꽃지 풍경은 사람을 품어 줄 만큼 아늑했는데 추운 날씨 탓으로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아무리 둘러봐도 점심 식탁을 차릴 만한 바람막이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버스정류소 유리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자." '궁즉통'(窮卽通)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전용 주차장 안 버스 승객들의 기다림 장소가 백수집단의 부엌으로 바뀌다니. 상전벽해를 눈앞에 펼쳐놓은 것 같다. 화덕의 참숯에 불을 지피고 홍합을 올려놓으니 조개 자체가 솥도 되고 뚜껑도 되어 저들끼리 야단이다.

참숯 홍합은 소주 안주론 정말 환상적이다. 내 앞의 도반은 한 잔 마시고는 붉으레하게 잘 익은 홍합속살을 입에 넣으며 "너무 닮았어" 하며 자꾸 웃는다. 나는 말뜻을 알아채지 못해 웃지 않았다. 정말이다. "우 하하하."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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