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깊은 생각 열린 교육] 지금은 설동설(說動說) 시대다

얼마 전 한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비율이 더욱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더 심각한 지점에 존재한다. 한국사 교육에서는 언제 일어났는가보다는 '왜? 어떻게? 앞으로는?' 등에 대한 사고가 더욱 중요한데 청소년 대부분은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단편적인 지식으로 암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들과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시험 치고 난 다음 잊어버리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시험 치기 전에 잊어버린다고 한다. 시험을 치고 일정 기간만 지나고 나면 기억력이나 실행력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웃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답답한 현실이지만 어쩌면 현재 교육 현장이 지닌 모습으로 볼 때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야기의 지속성은 크다. 어릴 때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이야기는 일종의 기억 틀이기 때문이다. 뇌의 기억구조로 볼 때 스토리가 없는 교육은 궁극적으로 생명이 없는 교육이다. 지식도 이야기로 녹여 놓았을 때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원시인들도 지식을 이야기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지식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행동도 변화시킨다. 최근에 출판된 '스토리텔링 그 매혹의 과학'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 상륙한 다국적 기업에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파견된 여성 직원들이 화려하고 야한 복장으로 자주 출근하는 바람에 중국 바이어나 중국 내의 다른 기업 직원들 사이에 오해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참다못한 회사 측에서는 복장 규칙을 제정해 여성에게 배부했다. 첫째, 짧은 치마나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파인 드레스를 입지 말 것, 둘째, 화장을 진하게 하지 말 것……. 이런 식으로 규정을 정해 여성 직원들에게 권고했다. 그러자 미국 여성 직원들은 당장 화를 내며 항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복장도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방침을 바꾸었다. 직원들에게 화려한 복장 때문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한 미국 여성이 화려한 복장으로 바이어들을 상담했다가 매춘부로 오인을 받아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뢰성을 상실해서 이루어져야 할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등의 사례들을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여성들의 복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같은 상황인데도 복장 규칙에는 반발하던 여성 직원들이 같은 내용을 이야기로 듣고 나서는 왜 스스로 생각을 바꾼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인 것이다. 단순하게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거나 규정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무엇이 바람직한 방향인가를 제시했다. 그것이 공감을 이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학생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영상과 이야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들에 맞는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천동설 시대, 지동설 시대를 지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설동설(說動說)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학교에도 이야기를 도입하자. 수업도 생활지도도 이야기로 바꾸어 보자.

한원경(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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