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는 인구 2만여 명 남짓하던 선산군의 소도읍으로, 1963년 읍이 되었다. 1978년 선산군에서 분리되었고, 칠곡군 인동면과 병합해 인구 9만여 명의 구미시가 되었다. 1995년 선산군과 다시 통합해 인구 30여만 명의 구미시가 되었으며, 오늘날 인구 40여만 명에 가까운 중소도시로 성장 발전하였다. 그런가 하면 낙동강 1천300리의 가운데가 바로 구미이고, '낙동강의 기적'을 일구어 낸 공업단지가 들어선 곳 또한 구미다.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제1'2'3'4단지가 차례로 조성되었고, 추가로 1개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기업체는 1천916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수출 총액은 2008년 말 342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오늘날 동아시아 최고의 전자산업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낙동강을 끼고 있어 공업용수와 식수 공급이 원활하고, 기후 역시 온난하고 지질층이 튼튼하여 정밀 첨단산업에 적합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가까운 거리에 김천과 상주, 칠곡과 대구 같은 도시와 농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인력 수급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만큼 기업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구미산업단지 조성은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수출지향적 공업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1969년 1월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사실상 시작되었으며, 1970년 8월에 청와대에서 있었던 수출진흥 확대회의에서 전자공업전문단지로 조성하도록 최종 결정되었다.
단지 조성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와 후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처음 단지 조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달갑잖게 여겼다. 그 까닭은 고향에 큰 사업을 벌이는 데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구미지역 유지들과 경상북도의 개발 의지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그 가운데 선산 해평 출신 재일동포인 곽태석과 코오롱의 이원만이 공업단지 조성에 앞장섰다. 곽태석은 1969년 9월 낙동강변 갈대밭 구릉지 45만여㎡(13만7천여 평)에 한국전자주식회사(당시 한국도시바주식회사)를 건립하였다. 또한 이원만은 대구에 있던 공장의 이전 확장을 위해 공업단지에 주식회사 코오롱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였다. 그와 함께 경상북도에서도 공업단지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도 더 이상 방관하지 못해 후원에 나섰고,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공업단지 조성 상황을 점검하고 지휘하였다.
구미산단 가운데 제1단지는 2개의 사업주체가 구심점이 되어 착수하였다. 즉 섬유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단지는 경상북도가 주체가 되었고, 전자단지는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체가 되어 조성되었다. 당시에는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고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토지수용이나 건설공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1972년에 완료되었다. 또한 제2단지는 1977년에 시작해 1981년 완료됨으로써 해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1973년 불어닥친 제1차 석유파동이었다. 그로 인해 입주업체들이 상당한 피해와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가 1979년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제2차 석유파동과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 같은 시대 상황의 변화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맞닥뜨렸으나 흔들리지 않고 1981년 12월에 제2단지 조성사업을 마무리하였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 LG'삼성'대우 등 가전 3사가 자리 잡았고, 코오롱과 제일합섬 등이 수출 전선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을 이끌어 나갔다.
최근 들어 구미지역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조업 근로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 설비의 해외이전 등 투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액도 2008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기업들이 생산 설비나 연구개발센터를 수도권 지역이나 외국으로 이전하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정주여건에 관한 문제인데, 교육'문화'의료 분야의 취약점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고무적인 것은 구미지역의 주종 산업인 LCD TV'LED'휴대폰 같은 전자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전통적인 산업에 비해 첨단 IT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최근 제5국가산업단지가 추가로 지정되었고,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으로 구미디지털 산업지구가 포함되었으며, 외국인 산업단지와 한'일전용 부품소재 산업단지 같은 외자 유치에 유리한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사진-구미 국가산업단지는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조성됐으며, 실제로 우리나라 최대 수출 단지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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