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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서랍의 형식(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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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의 서랍 바깥까지 열었다

서랍 속의 서랍 속의 서랍 속까지 닫았다

똑같지 않았다

다시 차례차례 열었다

다시 차례차례 닫았다

세계의 구석구석을 끌어 모은 검은 아침이 서서히 밝아왔다

누군가. 누군가 또 사라지는 속도로

아아, 나는 서랍 속이 얼마나 궁금했던 사람인지. 흡사 도벽처럼 낯선 집에 가서도 서랍만 보면 열어보고 싶은 충동 때문에 얼마나 곤혹스러웠던지. 특히 한약방에 있는 촘촘한 칸칸의 약재 서랍은 유혹의 절정이었는데 내 상상은 그 칸칸에서 나는 약초 냄새를 구별하기에 이르렀지.

'타락천사'라는 영화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면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대목이 있는데 나는 서랍을 보면 지금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보이고 취향이 보이고 과거가 읽힌다. 그리고 서랍을 보고 나면 단박에 가까워진 듯 서랍 주인에 대한 사랑이 생기기도 한다.

서랍 안에 담긴 시 공간은 꿈이고 기다림이며, 아픔이고 견딤이며, 만남이고 이별이다. 또한 기억이고 상실이며 과거이자 미래인 것이다. 내 서랍 속에 켜켜이 포개진 기억과 떠오르던 당신과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모두 따뜻하였다 할 수는 없지만.

서랍의 바깥, 그 바깥은 또 다른 세상의 구석. 우리가 열고 닫고, 또 닫고 열었던 무수한 행위들은 세상의 아침을 향한 손짓이었으니, 살아있음의 반복이었으니, 그거 서랍의 형식이었으니. 내가 그토록 열어보고 싶었던 당신, 당신은 몇 번째 칸에서 눈뜨고 계시는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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