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책은 일부 문화권력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문화 수요자와 공급자 입장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박현순 대구연극협회 회장은 대구시의 문화 정책이 전시성 행정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구시는 안경과 패션 산업을 지원하다 안 되니까 '공연문화도시'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소비자와 생산자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문화 정책들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T&G, 수요적 측면 우선돼야
박 회장은 대구 중구 수창동 KT&G부지에 문화창조발전소를 만든다는 계획이 대구시의 대표적인 문화 전시행정이라고 꼽았다. KT&G 부지가 공동화되어 있고 비어 있으니까 '놀리는 땅을 어떻게 특성화시킬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KT&G 부지는 2012년 말까지 음악, 미술, 연극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문화 시설을 조성할 때 어느 장소에 만들어야 흡입력 있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을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얘기다. "백화점 예를 들어보죠. 장사가 잘되는 매장도 있고 안 되는 매장도 있는데 매출이 부진한 매장은 과감히 직원이나 방문자들의 휴게실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죠. KT&G 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예술인들이 사용하는 공간보다는 차라리 미술인들의 창작기반을 조성하는 장소로 조성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는 공연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연극의 예를 들어도 이미 하드웨어적 요소는 충분하다. 소극장만 해도 대구에 10곳이 넘는다. 일부 문화권력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공연장 장소를 정하기에 앞서 공연 소비자들의 의향을 조사하고 그에 맞는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젊은이가 많이 찾는 동성로에 소극장이 여러 개 있는 멀티플렉스를 만드는 수요 접근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맞춤형 지원'복지 필요
대부분 예술인이 장르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보니 자신의 장르 챙기기에 바쁘다. 그렇다 보니 각 예술인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과 설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이미 음대 쪽 인력은 넘쳐납니다. 반면 국악이나 연극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그지없죠." 국악이나 연극은 기초 예술인 만큼 산업적인 측면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박 회장은 국악의 예를 들면서 남아도는 소극장 한 곳을 사들여 국악전용 소극장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국악인들이 국악에만 열중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또 대구문화예술회관(문예회관)에 예술인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어 예술인들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침체한 예술단체에 연수제 등을 실시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한테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적정한 지원과 복지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어요." 이 같은 지원이나 복지를 하는 창고를 일원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단체가 대구예총이라는 것이다.
음악인의 문예회관 관장 독식 문제도 언급했다. "행정을 잘하는 예술인을 찾기는 쉽지 않죠. 오히려 예술인을 배려하는 행정가라면 보좌하는 공무원 입장에서도 일하기가 훨씬 낫고 역할 분담도 확실하죠. 음악인들이 관장을 계속 맡으니 문예회관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못하죠."
◆대구문화재단 '시행착오 그만'
대구문화재단은 현재 사업을 주최하는 단체가 아니고 지원하는 단체인데도 마치 사업을 주최하는 양 행동한다고 박 회장은 꼬집었다. 문예진흥기금이라 해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마치 줄 세우듯 분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대구문화재단이 기획사 역할까지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 지원단체 심사를 할 때도 공연 관람을 하지도 않는 교수를 참여시키거나 단순히 심사위원을 안배하듯이 시민단체와 교수, 기획사 담당자 등을 참여시키는 것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더욱이 단순히 서류 검증만 하는 것은 서류에만 목매는 예술단체가 생겨나는 등 여러 가지 병폐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재단이 생긴 지 2년이 넘었으니까 더는 시행착오를 하면 안 되죠."
예술인들의 반성도 빼놓지 않았다. 이른바 '내 예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지원금에 맞춰 예술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공연문화도시 재점검을
대구시가 표방하고 있는 공연문화도시를 지금쯤 원점에서 다시 훑어봐야 하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박 회장은 강조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어떤 공연문화도시를 만들지 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트(art)로 갈 것인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로 갈 것인지, 아니면 버라이어티(variety)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섹터별로 나눠 두류공원은 '아트', 동성로는 '엔터테인먼트', 월드컵경기장은 '버라이어티'를 생각할 수 있도록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