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한국 천주교의 뿌리 역할을 해온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지난 4월 8일로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구대교구는 7일부터 15일까지 생명나눔대축제와 전시회, 강연회, 성경암송 발표대회, 청년'청소년 행사 등 다양한 경축행사를 진행하고 15일에는 대구시민운동장에서 100주년 기념 감사 미사도 봉헌한다. 100년 전 대구교구는 신자가 2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5만 명을 훌쩍 넘을 만큼 성장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의 의의와 새로운 100년을 향한 비전 등을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로부터 들어봤다. 정창룡 매일신문 편집국장과의 대담에서 조 대주교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깝게 다가가고 그들을 인도하며 하느님 뜻대로 복음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밀양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절망하기보다는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은 감회가 어떻습니까?
"주교가 된 지 4년이 넘었고 교구장 착좌를 한 지 4개월이 넘었죠. 이런 시기에 100주년이라는 크나큰 일이 왔다는 것이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현재 군종교구 포함, 전국에 16개 천주교 교구가 있어요. 서울대교구가 1831년 설립된 조선교구를 이어받은 것을 감안하면 100주년을 맞은 교구는 우리 대구대교구가 처음이에요. 10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려운 시기도 많았지만 9인의 역대 교구장님들이 슬기롭게 잘 헤쳐왔죠. 더불어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함께 헌신한 덕분이고 하느님과 루르드의 성모님(교구 제1주보)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분들이 함께해야 할 100주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00년을 되돌아볼 때 대구대교구가 이룬 많은 업적 가운데 몇 가지를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대구대교구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사회복지사업과 교육사업, 언론사업 등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915년 백백합보육원을 만들어 계산성당에서 양육하던 고아들을 맡아 키운 것이 사회복지의 시발이고 이후 수많은 사회복지 사업을 추진, 현재 교구 소속 사회복지기관만 139곳이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해성재(海星齋'효성초등학교 전신)를 세운 이래 현재 수도회를 포함해 18개 학교(초·중·고·대학)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문의 효시였던 천주교회보를 시작으로 매일신문 인수, 대구평화방송 개국 등 언론사업도 다른 교구에 비해 활발하게 해왔죠."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나 사업이 열리거나 추진되고 있습니다. 100주년 행사와 사업들이 갖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00주년 기념 경축대회의 주제성구를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로 잡았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돌봐주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들도 그렇게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경축대회는 우리가 서로 축하하고 열심히 잘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또 앞으로 이렇게 살자고 다짐하고 결의하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소망, 다짐을 하자는 것이죠. 100주년 기념 사업은 제2차 교구 시노드(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교구장의 부름을 받아 교구의 현안과 장래를 논의하는 회의)와 교구 100년사 편찬, 100주년 기념성전 건립 등 3가지로 3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2차 시노드는 '새 시대, 새 복음화'를 지표로 젊은이 복음화와 새 시대 선교,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의 배려, 교구와 대리구 및 사제 생활 등을 의제로 하고 있습니다. 교구가 새로운 100년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 것인지를 담고 있죠."
-대구대교구의 새로운 100년을 향한 비전과 방안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차 시노드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깝게 다가가고 그들을 인도하며 하느님 뜻대로 복음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욱 복음 정신으로 처신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말이나 글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말이죠.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최근 시내에서 봤어요. 무엇보다 바탕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남녀노소,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요. 교회도 이런 실천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어떤 비전보다 더 큰 비전입니다."
-대주교님이 처음 신부가 되셨을 때와 대구대교구장으로 활동하시는 현재를 비교할 때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무척 많죠. 4년 전 주교가 된 일이나 지난해 교구장이 된 일은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하지만 하느님이 이끌어 주신 것이니까 거부하지 않고 따랐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쓰일까'라는 의문도 갖지만 나 자신보다 공동체와 함께 나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모님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했듯이 저도 똑같은 심정입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해외지원 사업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실시하고 있는 생명사랑나눔운동을 보면 해외극빈국 돕기나 해외아동 결연사업 등이 세부사업으로 있습니다. 지난해 한끼 100원 운동을 펼쳐 2억7천여만원을 모았는데 해외극빈국 돕기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 같은 운동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이제 되돌려주자는 의미가 큽니다. 우리 교구도 지난 100년 동안 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죠.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 때 계산성당이나 성모당 등을 지을 때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은인에게 도움을 받았고 6'25전쟁 때도 미국 가톨릭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6'25전쟁 이후에도 다양한 후원을 받았고요. 이제는 감사하는 의미로 우리가 도움을 줄 차례죠. 현재 해외 선교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남미 볼리비아에 4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고 곧 남아프리카에도 2명을 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곳에 파견을 확대할 방침이죠."
-대주교님은 종교간 교류 및 화합에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종교간 교류 및 화합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종교는 모양은 다르지만 근본 정신은 '인간 구원'으로 같습니다. 우리 인생을 허무하게 끝내지 않고 완성하자는 것이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것만을 고집해 인류 화합에 걸림돌이 됩니다. 이는 곧 폭력과 전쟁으로 이어지죠.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상존함에도 지금까지 커다란 갈등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화합이 잘 되는 편이죠. 종교들이 화합하고 그런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종교의 또 다른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소통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근 사회 갈등을 보면 정부와 국민과의 소통, 국회 여야간의 소통, 종교간 소통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1월부터 한 달에 1차례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요. 처음 주제가 바로 소통이었습니다. 소통이라는 것이 서로 생각과 처지가 다르니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면서 몰랐던 부분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종교인들이 좀 더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네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밀양신공항 백지화 이후 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주교님 생각은 어떠한지요?
"밀양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대구 전체가 그만큼 힘을 썼는데 무산돼 안타깝습니다. 성직자로 세상 일에 깊히 관여하는 것은 문제지만 정말 지역에 밀양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수도권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왜 필요하냐'며 의구심을 갖다가 이유를 설명하면 그때서야 '아하, 그렇구나' 하더군요. 단순히 지역이기주의가 아닌데 수도권 사람들이 더불어 미래를 보는 시각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결국 소통이 제대로 안 된거죠.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고 밀양신공항이 살길이라면 계속 추진해야 되겠죠."
-거대한 대구대교구를 이끌어 가려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습니까?
"스트레스는 마음 속에 욕심과 미련이 있기 때문에 생기죠. 그런 것을 아예 포기하면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죠. 과거 2년 정도 업무상 골프를 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친 적이 없습니다. 골프에 대한 마음을 놓으니까 미련이 생기지 않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없더라고요.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고요. 가끔 주말에 시간이 나면 가까운 앞산에서 등산을 하거나 신학교 운동장을 신부들과 걷습니다."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면?
"100년 전 천주교가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지역민들의 이해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뿐 아니라 모두가 천주교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냈기에 오늘날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요.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앞으로도 열린 자세로 지역에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담 정창룡 편집국장
정리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 조환길 대주교는? 2007년 주교 서품…온화·인자한 성품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1954년 달성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대건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1981년 사제서품을 받고 사제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조 대주교는 덕수본당'형곡본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고 대구대교구 사목국장과 사무처장을 거쳐 2004년 1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매일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 3월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고 같은 해 4월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같은 해 7월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 대주교는 2009년 8월 제9대 교구장 고(故) 최영수 요한 대주교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이래 1년 2개월 동안 직무대행으로 교구장 업무를 수행해오다 지난해 11월 교황청으로부터 제10대 대구대교구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대구대교구 수장으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과 운동, 행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아왔고 업무 추진에 있어서도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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