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새로 구입할 때 소비자들이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 중 하나가 계기판이다. 대시보드 주변의 각종 장치들이 얼마나 운전자의 편의성을 감안해 설계됐는지를 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장치와 기능이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계기판 주변의 복잡도는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이를 손쉽게 조작하고 제어하는 직관성이 떨어진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 안전과 편의성이라는 운전자들의 선택 기준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직관성은 비단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통신호 체계도 마찬가지다. 녹'황'적 3색의 신호와 회전을 지시하는 화살표가 기본이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 두 가지 원형은 거의 변함이 없다. 유럽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신호 체계 중 하나가 '교차로 우회전 신호등'이다.
이 신호등이 있으면 운전자가 직진 차량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된다. 신호만 보고 멈추거나 우회전하면 된다. 우회전 신호등이 없는 현행 국내 신호 체계에서는 운전자들이 그만큼 피곤해진다. 우회전 구간에 횡단보도가 있으면 보행자 신호등과 다른 차로의 차량을 살펴야 한다. 이럴 경우 운전자의 시선이 흐트러져 그만큼 사고가 날 가능성은 높아진다. 대구에 설치된 우회전 신호등은 반월당 교차로가 유일하다. 우회전 신호등은 경찰청이 현재 추진 중인 '교통 체계 선진화 방안'에도 포함돼 있지만 아직 도입한다는 소식은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빨간색 화살표 신호등이 논란거리다. 지난달 19일부터 서울시내 교차로 11곳에서 시범운영 중인 이 신호는 좌회전을 금지하는 빨간색과 진행을 뜻하는 화살표 신호가 혼재돼 운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경찰청이 정작 필요한 신호는 뒤로 미루고 엉뚱한 데서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어저께 빨간색 화살표 신호에 대해 조만간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확대 도입을 추진했다 슬그머니 사라진 비보호 좌회전도 같은 케이스다.
기호학자 피에르 기로는 "모든 것은 기호다"라고 주장했다. 기호는 소통을 의미한다. 사회가 아무리 복잡해지고 다층적 구조로 바뀌더라도 기호는 가장 기본적인 해석의 도구다. 이를 가볍게 여긴 교통신호 체계 변화는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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