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한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전 세계 20억 명의 인구를 하객으로 불러 모은 윌리엄 윈저 영국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이혼한 뒤에서야 세상에 공개된,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는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결혼이다. 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제의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 커플은 세인의 축복을 받으면서, 한 커플은 남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결혼을 했다.
4월 30일 TV로 생중계된 결혼식은 이름처럼 세기의 볼거리였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뒤덮인 웨스트 민스터성당의 장엄한 위용과 뾰족한 아치형 천장에서 내려다보이는 결혼식 풍경은 그야말로 격조 높은 한 편의 그림 같았다. 'to love and to cherish, till death us do part.'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며 아끼겠노라고 수줍은 눈빛을 주고받던 신랑 신부의 모습은 세계인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1997년 겨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던 서태지 커플, 그들의 혼인 서약 역시 그 감동과 환희의 깊이에서만큼은 왕가의 결혼식과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신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그 맹세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껴주겠다고 한 약속을 너무 쉽게들 저버린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않겠노라고 한 마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변해 버리고 만다.
최근 미국의 이혼율이 다시 뛰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미 이혼전문 변호사학회 'AAML'에 따르면 결혼 15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율 변화 추세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떨어졌다가 올 들어 다시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반대다. 과거 외환 위기 때 경제적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가 크게 늘었었다. 그러다 보니 OECD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달 19일 발표된 통계청 발표에서 지난해 이혼율이 10년 만에 가장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이혼을 결심하는 미국과는 달리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긍정적이지 아닐 수 없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단점은 안 보이고 장점만 보인다. 하지만 결혼은 판타지가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고, 판타지를 깨뜨려 가는 과정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살아가는 일은 힘들다. 그것이 왕위 계승 서열 2위의 왕자와 결혼한 평민 출신의 왕자비이거나, 수만 명 팬클럽을 끌고 다니는 우상과 결혼한 자연인이거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서약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안고 가야 할 운명 같은 것이다.
최중근 구미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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