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년 '만 5세 공통과정' 불편한 진실

유치원·어린이집 양쪽 모두 "갑작스런 시행 경쟁만 더 치열해져…"

정부가 내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어린이는 모두
정부가 내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어린이는 모두 '공통과정'을 배우게 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십수 년간 이어져왔던 유아교육과 보육 통합의 첫단추를 꿰게 됐다. 하지만 유아교육계에서는 전반적인 밑그림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추진되다 보면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대구 북구의 한 어린이집.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가 없음)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정부가 내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어린이는 모두 '공통과정'을 배우게 하고, 이들 가정에는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유치원 교육비, 보육료를 일부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취학 직전 1년간의 유아 교육'보육의 선진화를 실현하려는 것"이라며 "의무교육이 사실상 10년으로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유아교육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제대로 된 준비과정 없이 급작스럽게 발표된 선심성 행정이 오히려 교육을 그르치고,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7월까지 공통과정을 마련해 내년 2월 담당 교사에 대한 연수를 실시하고 같은 해 3월 각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공통과정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유아교육계에서는 "너무 서두르다 배가 산으로 갈까 걱정"이라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만 5세 공통과정?

정부가 발표한 '만 5세 공통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의 서로 다른 교육 및 보육과정을 통'폐합해,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으로 양분돼 있던 것을 통합하는 첫걸음이다.

지금껏 3~5세의 교육을 담당하는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근거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소관해 왔으며, 0~5세까지를 돌볼 수 있는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소관해 왔다. '교육'을 강조하는 유치원에 비해 어린이집은 '보육'에 중점을 둔 시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그 역할에 차이가 크지 않아 통합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또 정부는 5세 미만 아동에 대한 학비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소득 하위 70%에만 학비가 지원되어 왔으나 내년부터는 소득에 관계없이 전 계층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지원 금액도 올해 월 17만7천원에서 내년 20만원으로 늘리고 2013년 22만원, 2014년 24만원, 2015년 27만원, 2016년 30만원 등으로 매년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액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무상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평균 교육(보육)비는 급식비와 현장학습비, 특기활동비 등을 제외하고 사립 유치원이 월 31만3천원, 사립 어린이집이 24만8천원 수준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16년에야 현 기본 보육료와 비슷한 수준이 되며 그마저도 '배보다 배꼽이 큰' 기타비용은 지원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내년 3월부터 만 5세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지급되는 유아교육지원비가 매년 거의 1조원, 1인당 월 30만원씩 지급하는 2016년에는 1조1천500억원의 추가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재원은 모두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할 것"이라며 "교부금 재원은 내국세의 20.3%가 자동 산정되고 여기에 교육세가 보태져 매년 3조원 이상씩 늘어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만 5세 공통과정' 도입 방안은 미래기획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초등학교 만 5세 조기 취학 방안'의 현실적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길 경우 교원수급, 교육과정 개편, 학교시설 재배치, 재정확충 등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만 기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활용해 '만 5세 공통과정'을 운영하면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아교육계 희비 갈려

정부가 만 5세 공통 교육과정 도입을 밝히면서 유아 교육계에서는 찬반 목소리가 크게 갈리고 있다. 공통교육과정 도입으로 비교적 교육비가 저렴한 것이 강점이었던 어린이집과, 꽉 짜여진 질 높은 교육이 강점이었던 '유치원'의 비교 요소 하나가 사라지게 된 셈이 됐기 때문에 양쪽 모두 앞으로 학부모들의 선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유아교육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준비 없이 도입되는 제도에 따른 혼란'이다. 사실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 논의는 벌써 십수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 밑그림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전체 영'유아가 아닌 만 5세 아동에 대한 지원책만을 밝히면서 혼란만 가중시키는 상황이 돼버린 것.

계명대 유아교육학과 이진희 교수는 "정부가 유아교육에 대한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반길 만한 정책이지만 벌써 십수 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유아교육과 보육기능의 통합 논의에 대한 밑그림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만 5세만 통합하는 발표를 내놓으니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제도부터 시설기준, 교육대상, 교사의 자격 등이 모두 다른 상황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나로 합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만 5세 공통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통합돼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김석일 대구사립유치원연합회 회장은 "만 5세만 공통과정을 운영하게 되면 유치원의 입장에서는 3, 4세 교육은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며 "더구나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됐던 어린이집까지 교육 예산이 투입되면서, 상대적으로 교육 전반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정책을 반길 것 같은 어린이집 쪽에서도 찬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정책적으로 봐서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이 이뤄지는 첫단추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치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한 곳이 많은 형편이어서 각종 기준 요건 강화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현승룡 대구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전체적으로는 아이들이 어딜 가든 똑같이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는 점에서 좋은 방향으로의 진전이지만, 부담스러운 부분도 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금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보건복지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 양분돼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담당 업무를 통합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 상태라면 혼란은 물론이고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학부모들은?

학부모들은 정부 지원이 늘어난다는 데 대해서는 반기면서도 교육과정보다는 안전성이나 부실에 대한 관리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 들어 대구에서만 썩은 칫솔 사건과 썩은 달걀 사건, 19개월 유아 폭행 논란 등이 빚어지면서 어린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보무들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인 것.

맞벌이를 하고 있는 이수진(29'대구시 수성구 파동)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 가서 뭘 하나 더 배워오는 것도 좋지만 학대당하지 않고 즐겁고 편안하게 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최우선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최근 뉴스에 자꾸 어린이집 관련 사건이 보도되다 보니 불안감이 커진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진희 교수는 "기본적인 노동시간이나 휴가 등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했다. 보육교사들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만 5세 공통과정 도입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갈등의 소지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만 5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만 정부가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게 되면 나머지 교사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석일 회장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임금 등 대우의 편차가 벌어지면 원치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