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조명은 꺼지고, 무대도 뜯겼다. 시간을 따라 여운도 사라진다. 떠들썩한 잔치였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잔치이고 보면 씁쓸함만 남는다. 이번 잔치를 되돌아보면 온 힘을 다한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찜찜하다. 국책 사업 결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진행하는 잔치가 아니라 '니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절박한 전장(戰場)임을 간과한 탓이다. 그러니 시신(屍身)을 붙들고, 정부에 왜 죽였느냐고 떠들어봐야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올 희망은 없다.
현 정부는 지난 어느 정부보다 정책 추진이나 그 처리에 허점이 많았다. 그러나 신공항과 과학벨트 선정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의도했든, 우연한 결과이든 아주 노회했다. 속된 말로 하자면 '어수룩한 놈이 당수 8단'이라는 '어당팔'이었다. 신공항은 미루고 미루다가 서울 언론을 이용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무용론으로 여론몰이한 끝에 백지화에 성공했다. 과학벨트는 현장 실사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발표 예정일보다 앞당겨 해치웠다. 소위 '5중털'(5월 중순까지 국정에 부담 주는 대형 사업 털기)이었다.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반성보다는 이왕 맞을 매라면 한꺼번에 맞겠다고 배짱을 부린 것이다.
일단 이 배짱은 통했다. 대중가요 노래 가사처럼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가 됐다. 정부의 배짱 뒤에는 믿는 구석이 든든하게 있었다. 신공항 백지화로 대구'경북'경남이 들끓고 있을 때 치른 재'보궐선거 결과다.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에서 기초의원까지 거의 전승을 거뒀다. 전략 공천을 한 수도권과 강원 도지사 선거에서는 졌지만 민심 이반을 걱정했던 텃밭은 여전했다. 전국 판도에서는 밀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전 이상을 건졌다. 이는 과학벨트를 예정 각본대로 밀어붙여도 별일 없을 것으로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됐다.
신공항과 과학벨트 유치전 과정에서 대구시장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선언했다. 경북도지사는 단식 투쟁을 하고, 일부 관계자는 삭발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지역 민심을 앞세워 총력전을 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반면 심판을 기대했던 선거에서는 '그래도 한나라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홀대에 대한 응징을 경고했다가 체면만 구겼다.
오랫동안 고생한 분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국책 사업 유치에 올인한 것처럼 보인 지역 민심은 망상이었다. 사실, 많은 시도민은 이번 국책 사업 유치전에 무관심했다. 지난 경험상 이런 일들은 정치 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잘되면 내 공(功)이요, 잘못돼도 아무 책임지지 않는 정치 쇼에 부화뇌동하고 싶지 않다는 정치적 냉소를 보였다. 정부도 역시 '오랜 경험으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결과는 앞으로도 정부나 정치권이 지역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음을 재확인시켰다.
서울공화국 혹은 수도권공화국이라 불리는 이 나라에서 지방이 정부의 어당팔 정책에 대응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부가 큰 선심을 쓰지 않는 한 각종 국책 사업 유치전은 백전백패다. 이는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민심에 바탕하지 않는 정책 추진은 분열과 혼란만 부른다.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걸고, 당선하면 헌신짝처럼 저버리니 지지율이 30%대에서 오락가락하는 3분의 1짜리 정권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민심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의 몫이다. '단호한 정치적 결단'을 그저 한 번 해본 협박성 엄포로, 단식이라는 극한투쟁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정당과는 척지지 않으려는 시장과 도지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위해 숨죽인 국회의원이나 시'도 의원 역시 민심을 얻을 꿈은 접어야 한다.
물론, 1년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 선거나 앞으로의 수많은 선거에서 지역의 특정 정당 몰표 경향은 여전할 것이다. 이것을 믿으니 지역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당에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믿음을 배신당한 민심이 그 책임을 물을 때 맹목적인 당 충성파가 설 땅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때는 뜻밖에 빨리 다가올 수 있다.
鄭知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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