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페리투어 상품이 하나 있다. 왕복 항해시간만 30시간. 거기에 인천까지 이동 시간을 더하면 꼬박 이틀을 선실과 차안에서 지내야 한다. 또 번거로운 출입국 수속. "에이~ 안가고 말지." 웬만한 여행 마니아가 아니라면 꺼려지는 코스임에 틀림없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선상에서 즐기는 서해 낙조.(연인과 함께라면 최고의 이벤트) 객실에서 좋은 사람들과 유쾌한 담소, 모닝커피와 함께하는 선상 일출, 거기에 비용은 항공기 투어의 절반 수준. 갑자기 페리의 기관음이 정겹게 느껴지지 않는가.
◆인천 연안부두~단동(丹東) 페리로 15시간 거리=모든 여행이 일정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지난달 13일 오후 7시 30분에 출항하려던 단동 페리는 하역, 선적작업이 지체되면서 무려 4시간 늦게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했다. 행선지는 중국 압록강 근처 국경도시 단동. 중국 봉성시와 트레킹전문사 '산이 좋은 사람들'이 주최한 '한'중 친선 봉황산 트레킹'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객실은 6인실, 2층 침대로 돼있다. 물론 더 저렴한 다다미방도 있다. 목욕탕, 화장실을 갖추고 있고 중간에 테이블을 배치해 간단한 식사나 술자리를 가질 수 있다. 페리투어는 주류 반입이 허용된다. 선내 매점과 카페테리아에선 술도 판다.
다음 날 정오쯤 배는 단동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장에서 서류 착오가 생겨 3시간쯤 입국이 지연됐다. 이 때문에 그날 일정이 엉망이 돼버렸다. 부랴부랴 압록강 단교(斷橋) 답사와 압록강 유람선 투어를 끝냈다. 분단의 현장인 신의주철도를 10여 분 만에 돌아본 게 아쉽다.
아쉬움은 유람선투어로 달랬다. 압록강투어는 국경 수계(水系)를 도는 것이 아니라 위화도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월경(越境)투어다. 무장한 국경수비대 초병들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아마도 유람선이 중국 국적이어서 이런 특혜(?)가 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강 옆에서 어구(漁具)를 챙기는 북한 주민들 모습이 보이고 농장에서 작업을 끝낸 주민들이 바삐 농로를 걸어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밀레의 '만종'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귀가 길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
◆압록강 조개 안주삼아 압록강 맥주 한 잔 '일품'=압록강변 야경을 대충 둘러보고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는 신의주와 단동은 외관적으로 큰 차이가 났다. 단순 비교지만 두 도시를 비추는 네온사인 규모에서 이미 두 체제의 게임은 끝난 느낌이었다.
저녁에 현지 여행사의 초청으로 조개구이 파티에 참석했다. 국경지대인 압록강에서 잡았으니 중국산도 되고 북한산도 되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북한산이라고 내놓으면 더 좋아한다.
숯불에 구워먹는 방식은 똑같았고 소스는 조금 차이가 났다. 땅콩가루에 된장을 섞은 형태인데 우리 입맛에는 한국식 초장만은 못했다. 이외에 양고기, 소고기 꼬치도 나오는데 싱거운 '압록강 맥주'(2.5도)와 곁들여 먹는다. 도수가 낮기 때문에 병째 건배를 하며 '완샷 엄수'를 해도 취하지 않는다.
이튿날 오전 5시 30분에 기상해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14일 봉황산에서 봉성시 여유국(旅遊局'한국의 문화관광과)에서 주최하는 한'중 등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버스로 1시간쯤 달려 행사장에 들어선다. 중국 측 산악인들이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양국 산악인들은 패트롤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산 중턱 등산로 입구로 올랐다.
봉황산은 한국고대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봉황산은 645년 당태종이 30만 군대를 이끌고 침입했을 때 당시 성주였던 양만춘 장군이 화살 한 방으로 야욕을 막아낸 곳이다. 봉황산의 위치에 대해 학계에 이설(異說)들이 있지만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안시성을 봉황산으로 정정하고 있다. 이규태 씨도 '신열하일기'에서 봉황산을 '당 태종의 야욕을 좌절시켰던 우리 민족의 저항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해방기념탑을 들머리로 본격산행이 시작됐다. 참나무, 단풍에 철쭉까지 이곳 등산로는 한국의 강원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높이도 낮다. 836m로 봉화 청량산, 북한산과 동급이다. 군데군데 고개에는 간이매점이 들어서 있다. 주로 과일과 음료수를 판다.
드디어 능선에 올랐다. 선인과를 지나 장군봉에 이른다. 바위능선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두 귀를 쫑긋 세운 토이봉(兎耳峰)이 보이고 국가의 경사 때마다 봉황이 나타났다는 봉무송(鳳舞松)도 맵시를 뽐낸다.
케이블카 종점을 지나 30분쯤 오르면 봉황산의 명물 노우배(老牛背)가 나타난다. 말 그대로 '늙은 소의 등' 모양을 하고 있다. 소 잔등이에 올라탄 듯 암릉은 변화무쌍이다. 양옆으로 수백 길 절벽이 입을 벌리고 있다. 공포와 비경의 아찔한 동거, 봉황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암릉'절벽 따라 아찔한 등산로, 과연 천하절경=소 잔등이를 벗어나면 백보긴(百步緊)이다. 의미대로 '100걸음의 긴장'이다. 직벽엔 일일이 정으로 쪼아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천하절(天下絶)을 지나 호랑이입(老虎口)를 통과하면 오늘 목표인 전안봉(箭眼峰)이다.
전안(箭眼)은 화살과 눈이니 언뜻 '당태종의 눈에 박힌 화살'이 연상 됐다. 위치도 옛 안시성이니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나중에 중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전안(箭眼)은 '성벽에 활을 쏠 수 있도록 파놓은 구멍'의 뜻으로 '그 사건'과는 무관했다.
힐끗 뒤를 돌아본다. 아무리 봐도 한국의 산과 너무 닮아있다. 노우배 쪽 암릉들은 도봉산의 포대능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고 화살촉처럼 뾰족한 전안봉은 북한산의 백운대를 빼닮았다. 유홍준 교수도 "봉황산에서는 한국의 DNA가 느껴진다"고 했을 정도다.
바로 밑 전안(箭眼)을 빠져 나오면 암벽을 따라 수백 개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중국 관광객들 틈에서 30분쯤 내려오니 천년고찰 조양사가 막아선다.
공원엔 소풍을 나온 중학생들이 소란스럽다. 천진난만 하게 뛰어노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한국의 아이들처럼 대부분 휴대폰을 가지고 있고 시간 날 때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똑같다.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페리로 돌아온다. 다시 15시간 긴 항로가 시작될 것이다. 가는 길엔 연암의 연행록을 꺼내들어야겠다. 1780년 마부와 노복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던 연암. 동북아를 제패한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의 기초를 다지려 했던 그다. 지금 중국은 그때의 청과 많이 닮아 있다. 오히려 동북아를 넘어서 세계를 향해 굴기하고 있다. 열강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예각을 세우고 있는 현실도 당시와 똑같다.
얽히고설킨 한반도의 미묘한 역학구도. 더구나 남북 분단 변수까지. 연암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열하일기에서 해법을 찾아볼까?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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