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과 생활] 다르게,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동네 어귀 한 모퉁이엔 시금치 오이 가지 호박 들깨 등 갖은 채소가 우리들의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기 위해 한여름 땡볕을 이겨내고 있으며, 그 옆으로 늘어선 주택의 담장 위로는 수세미가 호박 넝쿨사이를 뚫고 기어오르고 있다. 늦가을이 되면 휑한 들판에서 두더지를 잡고, 타작한 들깨묶음 사이로 뛰어다니다 저녁이면 새까만 얼굴로 저마다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앞마당이 넓직한 동수네 집, 골목길 앞쪽으로 가게를 설치한 창호네 집, 마당의 우물이 참 시원했던 경희네 집, 대문 어귀엔 돼지우리가 있어 대청마루 아래에 돼지들이 들락날락했던 재영이네 집… 우리들의 집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양성 가운데 우리 삶의 터전을 아름답게 보전해왔다. 우리들의 지난날 삶의 모습도 다양한 주택의 모습 속에서 저마다의 꿈들을 키우면서 자라났다. 삼백만 년 전에 이 지구상에 인간이 등장하고 오천 년 전에 겨우 도시를 건설한 우리 인간들은 이제 그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주거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고 서로의 이타성(異他性)을 중시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적 개념의 장소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의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렇게 상품화된 주거장소를 명품단지라 부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목소리로 서로를 질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지난날 우리들의 기억 속의 상상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저마다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게 되는 똑같은 건물의 형태와 창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더이상 다양한 상상력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날 골목길 어귀를 돌아들면 나타나는 또 다른 세계가 늘 우리들에게 궁금증과 즐거움을 주었듯이, 이제 우리의 흔적을 보존하고 저마다의 삶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가 그 꿈을 키워나가도록 주거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예컨대, 영국과 미국의 오래된 연립주택(row house)은 단독주택과 같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공동시설 등을 갖춤으로써, 도시의 미관을 획일화시키지 않으면서 다양한 상상력을 유도하는 주거형식이다. 이 주택들은 현재까지도 존재하며 도시주거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립주택은 지역의 환경과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최근 서울근교의 타운하우스 등의 주거 모습들이 이와 유사한 주거형태를 하고 있다. 다만 땅값과 공사비의 상승 등으로 인해 모든 시민들이 이러한 주거형태를 소유하기는 어려우므로 타운 하우스, 연립주택 등에서 발전하여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변형된 개별주거 형태가 앞으로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투리땅을 활용한 미니주택이나 땅콩주택, 또는 침실은 각자가 사용하고 주방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기거하면서 생활의 편리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한 복합주택 등 우리 건축사의 노력이 더한층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이렇듯 다양한 개체가 모여서 하나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듯이, 각기 다른 형태의 주거공간 속에서 다르게 살아가면서 하나의 커뮤니티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그 시대 역사에 자신이 참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대구시 건축사회 부회장 최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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