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장기면은 신라시대 지답(只沓)에서 고려 현종 때 장기현으로 개칭됐다. 북으로 지금의 호미곶면에서 남으로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까지 길게(長) 뻗은 지역이다. 촌명이 마산(馬山)인데다 장기읍성 남쪽의 산이 용마산으로 마(馬)자와 관계 깊은 말목장 지역이기 때문에 '장기'란 명칭이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 읍지에 산을 등지고 바다와 임한 지역으로 좁고 길어 배산임해지라고 했다.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유배올 때 마산촌(馬山村)이란 마을 이름이 있다는 것을 듣고 신기해했다. 고을 이름에 '기'자와 마을 이름에 마(馬)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의 지명은 지답, 기립, 장기, 봉산, 지행으로 불리어 오다가 지역 주민들의 지역 명칭 회복운동으로 1991년 12월 1일 다시 지금의 장기로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장기면 방산리에서 고석사를 거쳐 길등재를 넘어 정천리 가는 길을 나서보기로 했다.
포항시내에서 오천을 지나 장기면사무소에서 장기천을 따라 6㎞ 정도 들어가면 방산2리가 나온다.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 이곳은 요즘 한창 산딸기가 익어가고 있다.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산딸기뿐만 아니라 마을 산길 주변에서도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산딸기를 손쉽게 따먹을 수 있을 정도다.
방산리는 삼봉산 한 지맥이 남동으로 내려오다 묘봉산에 이르고 묘봉산 마주보는 동쪽에 망해산이 있다. 묘봉산 아래에는 괴정이 있고 망해산 아래에 평동이 있다. 두 마을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만나는 곳에 육송정이 있으며 육송정 동남에 팔어실이 있고 팔어실에서 방일천 건너편 동악산 아래에 거산이 있다. 거산, 팔어실, 육송정을 방산 1리, 평동'괴정을 방산 2리라 한다.
◆고석사
방산2리 평등교 삼거리를 지나 100여m 가면 고석사를 알리는 표지석에서 하천 건너 5, 6분 걸으면 고석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고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의 명으로 세워졌다고 전해져 창건연대는 632∼647년 사이로 추정된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세 줄기 서광이 3일 동안 궁전을 비추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 빛의 발원지를 찾도록 명령했다.
신하들이 알아 보니 현재 절이 자리잡은 곳에 있는 바위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여왕이 신하들에게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점을 잘 치는 한 태사관이 그 바위를 다듬어 불상을 만들고 사찰을 세워 모시면 길하다고 했다. 이에 선덕여왕은 이곳에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시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없고 단지 한때 고석암이라 불렸다는 말이 전할 뿐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과 산신각'요사 등이 있다. 보광전은 주심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전각 내에는 자연석을 깎아 만든 높이 2m 정도의 약사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것이 신라 때 조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통일신라 미륵불의상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법당인 보광전은 네모난 큰 바위의 한 면에 석굴 형식으로 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조성한 뒤 부처님을 돋을새김해 모셨다. 이 불상과 바위는 석고가 두껍게 입혀져 있다. 사찰기록에 따르면 1923년 무렵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간 불상을 성형하기 위해 석고를 발랐다는 것.
그런데 2008년 주지로 부임한 종범 스님이 마애불 위에 두껍게 덧칠한 석고를 벗겨냈더니 1천300년 전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고색창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둥글넓적하고 이목구비에서 힘이 느껴지는 새로운 불상이 나타난 것이다. 높이 222㎝, 무릎 폭 95㎝ 크기의 불상은 특이하게도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불상은 그동안 약사여래불(질병을 치료하는 부처)로 알려져 왔지만 종범 스님은 "약사불이라면 당연히 들고 있어야 할 약병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방산저수지
방산2리 마을회관에서 방산저수지까지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마을회관에서 저수지로 향하는 200m 정도는 콘크리트로 포장이 돼 있지만 나머지는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길 그 자체다. 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도수로를 따라 마을 논밭으로 속속 흘러 들어가 벼들이 초록의 생기를 띠고 있다. 주변의 땅들이 마른 숨을 내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저수지로 향하는 좁은 길 옆으로는 산딸기 나무가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낸다. 6월의 햇살을 받아 산딸기가 한층 붉은빛을 발하며 탐스럽게 영글어 가고 있다. 길을 걸으며 산딸기를 따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20여 분을 올라가면 시원한 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2002년 준공된 방산저수지는 길이 208m, 높이 36m로 규모가 85만2천㎡나 된다 .
저수지에 담겨 있는 초록색 물빛이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방산저수지에서 땀을 훔치며 불어오는 산바람에 잠시 발을 쉬면 걷느라 지친 고단한 몸이 한결 편해진다.
◆길등재 가는 길
방산저수지 왼쪽으로 묘봉산 자락의 길등재를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저수지를 내려와 10분쯤 걸으면 아래쪽에는 누군가 조성해 놓은 넓은 공터가 하얀 이마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길등재가 시작된다.
예전에는 방산리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오천시장을 넘나들던 곳이다. 지금은 마을에서 장기면사무소까지 마을버스가 하루 3차례 운행되는 데다 집집마다 차량을 갖고 있어 굳이 힘들게 길등재를 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방산2리에 50년째 살고 있는 박용수(87) 옹은 "30년 전만 해도 지게에 수박과 오이, 산나물 등을 지고 길등재를 넘어 오천시장에 내다 팔았다"면서 "그때는 길등재를 넘는 것이 오천시장에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옹은 "오천시장에서 물건을 내다 팔고 밤늦게 재를 넘으려면 산짐승들이 나타날까 봐 겁이 나 몇 사람씩 어울려 재를 넘던 기억이 새롭다"면서 "이제는 길등재가 아련한 옛길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흙길을 20여 분 오르면 길등재 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95년 해병대 장병들이 방산리와 정천리 주민들을 위해 3㎞ 구간의 험난한 옛길을 승용차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한 기념으로 세운 표지석이다.
표지석을 자세히 보면 처음에는 칠등재와 질등재로 새겨져 있던 것을 길등재로 고친 흔적이 역력하다.
어떤 이는 칠등재, 질등재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길등재라고 부르는 등 혼선이 있다.
박 옹은 예부터 칡이 많이 나 이곳을 칡등재로 부르던 것이 칠등재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정말 재를 오르는 양옆 길가에는 칡덩굴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향토사학가 이상준 씨는 길등재가 맞다고 했다. 경상도식 발음으로 예전 사람들이 실(질)등재로 불렀는데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길을 '실, 질'로 발음하는 습관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동국여지승람에도 길등재로 나와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씨는 "경상도 특유의 발음에서 문제가 된 것"이라며 "일부 나이 드신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데 길등재의 정확한 표기를 널리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표지석에서 발길을 옮기면 제법 가파른 길이 나온다. 잔잔한 돌멩이가 깔려 있어 자칫 발을 잘못 내디디면 미끄러져 낭패를 볼 수 있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이 생계를 위해 이 재를 수백 번도 더 넘나들었을 생각을 하면 지금의 재넘이는 사치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길등재가 이제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정천리에서 방산리를 잇는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만 이 재를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를 거의 다 넘을 즈음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망치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곳곳에는 파헤쳐진 나무의 뿌리가 하늘로 드러낸 채 바짝 마른 몸을 내보이고 있다. 옛길도 점점 현대화에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등재를 넘어 정천1리쪽으로 내려서면 도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도암사는 법화종으로 1978년 세워져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방산2리에서 길등재를 넘어 이곳까지는 6㎞가량 된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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