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소름이 돋아요."
김미현(가명'37'여) 씨 집에 있는 전화기는 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따르릉' 소리 대신 불빛만 반짝인다. 미현 씨는 세상에서 전화벨 소리가 가장 싫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했어요." 사채업자들은 물리적 폭력 대신 전화로 그를 괴롭혔다. 자신이 빌리지도 않는 돈을 갚기 위해 10년을 견뎠지만 아직도 7천800만원이 남았다. 빚과 함께 미현 씨에게 남겨진 것은 병든 몸이다.
◆줄어들지 않는 빚
21일 오전 대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미현 씨는 수척했다. 1㎝도 안 돼 보이는 머리카락과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약봉지는 그가 환자임을 보여준다. 미현 씨는 지난해 11월 병원에서 비인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8개월째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요즘은 매일 오후 1시에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요."
인터뷰 중에 미현 씨가 갑자기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에 고개를 박고 토사물을 쏟아내는 그의 거친 숨소리가 화장실 문틈으로 새나왔다.
그는 '억척 엄마'였다. 오전에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오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뚝배기집에서, 야간에는 식당에서 불판 닦는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다. 2시간만 자는 날도 허다했다. 미현 씨가 일에 집착해야 했던 것은 빚 때문이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은 친구와 함께 주유소를 운영했다. 그때 동업자가 주유소를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수억원을 빌렸고 미현 씨 부부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했다. 미현 씨도 사채업자가 내민 연대보증서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주유소는 망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남편 친구는 자살을 시도해 지금도 식물인간 상태다. 그때 충격으로 남편은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위 출혈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다. 금방 병원문을 나설 것 같았던 남편은 3일 만에 숨졌다. 미현 씨는 슬퍼할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남편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이 100만원뿐이었다.
◆사채업자 피하려 이름도 바꿔
사채업자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빚 독촉을 했고 직장에도 찾아왔다. 2003년 경북 고령에서 대구로 이사온 뒤 그는 화장품 회사에서 일했다. 사내들은 직장에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협박했고 미현 씨 몰래 집에 들어가 바닥에 누워 있기도 했다. 사채업자들 때문에 직장에서 2년 만에 해고당했다. 식당일을 할 때도 그들은 월급날에 맞춰 미현 씨 집으로 찾아왔으며 매달 30만원이었던 상환액을 70만원으로 올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뚝배기집에서 번 돈은 따로 모아뒀어요." 미현 씨는 매달 10만원에서 20만원씩, 뚝배기집에서 번 돈을 5년 넘게 한푼도 쓰지 않고 500만원을 마련했다. "소송을 하려면 변호사 선임비랑 이것저것 최소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남편이 죽은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 위 출혈로 입원했던 남편이 왜 신부전증과 패혈증으로 숨졌는지 병원에서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문을 두드린 변호사 사무실에서 공소시효가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미현 씨는 그렇게 남편을 가슴에 묻었다.
그는 2008년 개명을 하고 사채업자들 몰래 이사를 했다. 아들(17)과 딸(13)의 이름도 함께 바꿨다. "족쇄처럼 내 인생을 얽매는 빚더미가 싫었어요. 이름을 바꾸면 사채업자들이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년이 흘렀을까.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찍혔다. "김XX 씨죠?" 그의 옛 이름을 묻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사채에 저당잡힌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쓴맛으로 가득 찬 인생
미현 씨가 일을 그만두고 몇 달째 빚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들이 집에 찾아왔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죄다 빠졌을 때였다.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빚을 다 갚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독한 업자들은 그가 치료받는 병원에 연락을 해 사실을 확인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우리 집에 빚이 그렇게 많아?" 미현 씨는 "엄마가 갚을 수 있을 정도"라며 아이들을 안심시킨다.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8만원씩 드는 치료비도 부담스러운데 나약해진 몸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취재진을 만난 날 미현 씨는 전화로 김치를 주문했다. 음식 솜씨 좋은 미현 씨는 아이들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줬지만 지금은 장보러 가는 것도 힘든 상태다. 항암치료를 받은 뒤 짠 음식을 먹어도 쓴맛이 나 음식 간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했던 말이 생각나요. 죽을 때가 다 되면 모든 음식이 다 쓰게 느껴진대요." 미현 씨가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질 두 아이와 그 아이들에게 대물림될 몹쓸 사채 빚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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