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동강을 댐으로 막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자들과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영원 이전부터 흘러와 영원 속으로 흘러가는 동강은 영원하게 흘러야 한다'는 게 선명한 반대 이유였다. 고집 센 정권과 민중의 샅바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대구의 뜻있는 산악인들이 '동강 탐사대'를 결성하여 4박5일 일정으로 현지로 떠났다. 그날은 1999년 5월 1일로 대원은 7명이었다. 탐사대는 자연 그대로 보전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잠시 접고 원점에서 동강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 개발이냐 보전이냐를 결정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대원들은 동강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정했다. 첫째 제장리 동강 변에서 하룻밤 비박하기(천막 없이 야영하기), 둘째 신동읍 운치리에서 거운리 섭새마을까지 37㎞를 8시간에 걸쳐 래프팅하기(고무보트 급류타기), 셋째 동강변의 백운산과 주변 계곡 등반하기 등이었다.
도착 첫날 탐사대는 제장리 최돈옥(당시 59세) 씨 집 앞 강변에 진을 쳤다. 천막이 없으니 깔개를 깔고 버너와 코펠을 펴는 것이 전부였다. 인근 점대마을 이종숙(당시 56세) 씨 집에서 사온 민물고기로 조림과 튀김은 물론 매운탕까지 끓였다.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드레스를 입은 멋쟁이 여인이 없을 뿐 강변은 멋진 야외 파티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밤 분위기는 정말 근사했다. 대원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산에 다녔던 산 친구들로 가문의 내력은 물론 주량과 버릇까지 훤히 꿰고 있는 터수였다. "비박하려면 소주 한 병씩은 더 마셔야 돼. 새벽되면 무지 춥다." 동강 변 5월의 자갈밭 정원은 정말 추웠다. 일곱 사람이 침낭 하나씩 덮고 나란히 누워 있으니 구조헬리콥터 오기를 기다리는 집단 조난 현장과 같았다.
강변의 밤 정취는 취기가 어울러 준다. 술 마실 땐 보이지 않던 밤하늘의 별들이 침낭 속에 드러누우니 회전하는 조명처럼 무리지어 빙글빙글 돌아간다. 내가 취한 걸까 하늘이 취한 걸까. 미리내의 휘장 속에 숨어 있던 별들의 밤 공연이 이제 막 시작되려나 보네.
트럼펫, 그래 트럼펫. 이런 밤에는 트럼펫이 있어야 하는 거야.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몬티가 눈물을 흘리며 분 니니로소의 '밤하늘의 트럼펫'이란 곡이 아니라도 돼. 루이 암스트롱의 '세인트 루이스 블루스'나 '제임스 인퍼메리 블루스'를 흉내 내는 아마추어 솜씨면 어때.
트럼펫의 애잔한 멜로디가 기억 속에서 "빠바바 빠바바아"하며 앞서 나가자 백운산 듬 밑의 새들도 허밍 코러스로 뒤따라간다. 그 중에서도 '비오 비오'하고 우는 박새와 '홋또 홋또'하며 우는 소쩍새 소리가 단연 일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콘서트에 초대되긴 난생 처음이다.
이윽고 아침이 왔다. 동강변의 아침은 산뜻하고 싱그럽다. 아침밥 준비를 하고 있으니 최 씨가 엊저녁에 쳐둔 그물을 걷어 내려온다. 그물 안에는 배때기가 희끗한 물고기들이 입맛을 당기게 한다.
"어른장, 그 고기 회쳐 먹게 좀 주고 가세요." "서울 손님이 예약한 것인데." 대원 하나가 얼른 고기를 빼내 배를 따기 위해 강가로 뛰어간다. 어름치와 꺽지 등 회를 뜨기 딱 좋을 인물들이다. 별들의 공연과 밤새들의 코러스 그리고 밤하늘의 트럼펫 연주 등 강변에서 천막 없이 보낸 하룻밤은 신이 내려준 놀라운 은총 그 자체였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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