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층간소음

그땐 정말 짜증 났는데, 지금은 '사람사는 소리'가 그립네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류용현(대구 북구 동천동)

다음 주 글감은 '7월'입니다.

♥ "내 집이지만 남의 집 같은 느낌"

우리는 고양이 가족이다. 뒤꿈치를 들고 살살 걸어 다녀야 하니 매일 잔소리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아래층 사람만 별나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층간소음을 예사로이 넘길 수도 있지만 어떤 날은 유난히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예술적인 감각이 없어도 낮에 들으면 아름답지만 한밤중에는 소음일 수밖에 없다. 공동생활 공간에서는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엔 세 번 이상을 참아내야만 이웃 간의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게 바로 층간 소음이다. 지난해 여름, 아이는 겨우 잠을 청하였고, 몸집이 큰 남편은 뒤척이다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더니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아파트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주민 신고가 들어왔는데, 아이가 쿵쿵 뛰어서 잠을 못 자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잠을 잘 수가 없어 신경이 곤두선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쿨쿨 자고 있는 애가 어떻게 뛰냐고 도로 물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한밤중에 몇 번이나 인터폰으로 언짢은 말이 오가게 되었다.

지금 가만 생각해 보니 아래층 사람 역시 잠을 설치며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먼저 빌미를 제공한 건 우리 집이었는데 결국은 '뚱뚱한 죄'였다.

그날 이후부터는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살'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서로 주의를 준다. 내 집이지만 남의 집에서 사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박선민(대구 달서구 유천동)

♥ 갑자기 아래층에서 쿵쿵!

지난 주말이다. 모처럼 만에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내려왔다. 점심식사 후 서가(書架) 한쪽에 꽂혀 있는 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아들이 어릴 때 살았던 황금 아파트에 가보잔다. 그곳에 살았던 때를 햇수로 따져보니 근 30년이 다되어 간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아파트가 대량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런지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였다. 재래식 화장실에다 위 아래층 벽두께도 얇아서 층간 소음이 무척이나 심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이다. 설날까지 끼워 사나흘 정도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쉬는 날이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출근을 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네 살짜리 아들 녀석과 제대로 한번 놀아주지 못했다.

이런 아들 녀석인지라 낮에도 아빠가 곁에 있으니 신이 났던 모양이다. 좁다란 아파트가 떠나갈 정도로 깔깔거리더니 뛰고 내달리는 등 야단법석을 피워댔다. 그러기를 한 두어 시간 지난 후였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층도 아닌 바로 아래층에서.

소리가 하도 요란스럽게 계속 나기에 내려가 보니 주인아저씨가 기다란 막대기로 천장을 두드렸다는 것이다. 직접 와서 말을 하지 않고 막대기로 항의하는 간접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물론 웃으며 사과를 했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그 이후로는 더욱 가깝게 지냈지만….

그런 추억의 아파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덩치 큼지막한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아침이면 넥타이 차림에 꺼먼 양복을 입고 아파트 문을 나서는 나를 향해 흔들어주던 아들 녀석의 앙증맞은 고사리 손이 눈에 어른거린다. 비록 좁아터진 아파트, 층간 소음이 많이 나는 아파트지만 그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한(경산시 옥곡동)

♥시끄러워 당장 이사 가려고 했는데…

아파트 층수가 많을수록 층간소음은 더 심하고 소음 발생 위치 추적도 불가능하다. 분명 벽에 못질하는 망치질 소린데 딱히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옆집인가? 싶다가 위층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래층에서 울려서 올라오는 소리 같기도 하다.

어느 해 초겨울, 으슬으슬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아 오죽하면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 왔을까? 아내의 퇴근시간을 보니 아직 까마득한데 혼자서 병원에 갈 기력도 없어 곧장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는데 어디선가 쿵쿵! 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왔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 보니 열도 나고 골이 덜렁덜렁하는 것 같은 증세가 계속되는데 그 망치질 소리가 내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해 달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 지를수록 내 머리는 더욱 조여져 오며 터질 것만 같았다. 할 수 없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와달라고 했더니 "얼라(아기)도 아니고 아프면 병원 다녀올 것이지" 하면서 끊더니 약을 지어서 들어왔다. 약에 취해서인지 인사불성으로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세상은 조용했다. '날만 새면 당장 이사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밖은 평온한 세상이었다. 감기약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사람 사는 소리로 여길 수도 있는 일을 층간소음이라 하니 기분에 따라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자고 나면 당장 이사 가려고 했던 작은 아파트에서 10년을 넘게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자녀들이 성장하니 아이들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층간 소음으로라도 사람 사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일까?

박순원(대구 수성구 황금동)

♥ 주택으로 이사한 뒤엔 "해방감"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꿈에 그리던 학교 정문 앞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친구들이 많아 너무나 좋아했지만 그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맨 먼저 이사 떡과 음료수를 준비해 바로 아래층에 내려가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노부부가 사셨는데 교양이 있으신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수시로 시골에서 가져온 과일이나 채소를 가져다 드렸다. 그럴 때마다 냉정한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할 뿐 시간이 지나도 처음 뵙는 것 같은 서먹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미안했지만 늘 '조용 조용, 조심조심' 하다 보니 둘째는 돌이 갓 지났는데도 말을 다 알아듣고 형을 따라 아예 습관적으로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 그런데도 툭하면 인터폰이 울렸다. 아무리 우리 집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라고 했다.

첫째가 딱 한 번 친구들과 계단을 올라오며 그냥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친구들 앞에서 시끄럽다며 화를 내셨다고 해 그때는 정말 서운했다. 늘 연세가 많으니 우리가 조심하자 했지만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마침 우연한 기회에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맨 먼저 한 말이 "우리 맘 놓고 뛰어도 되지?"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몇 년간 습관이 되어서인지 한참 동안 까치발을 하고 다녔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한울타리에서 사는 동안 서로 조심하면서 층간 소음으로 인해 마음 상하지 않게 서로 이해하면서 얼굴 붉히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서로 노력하면서 실천해야만 다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진란(대구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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