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삼성전자 백혈병, 첫 산재 인정 판결의 의미

서울행정법원이 23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모, 이모 씨 등 근로자 2명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유족들은 소송 상대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유족급여를 지급받게 됐다. 재판부는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숨진 근로자들이 시설이 노후화된 기흥공장 3라인에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함께 소송에 나선 다른 직원 2명과 유족 1명은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승소하지 못했다. 피해자 측과 근로복지공단 측은 1년 5개월 동안 법정 다툼을 벌여왔는데 피해자 측이 달라진 작업 환경에서 과거 작업장 환경의 유해성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법원이 일부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데 그친 것도 그만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방증한다.

재판 과정에서 반도체 공정에 9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들이 반도체 회로 패턴을 형성해 주기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에 10가지의 화학물질이 사용되었으며 이 중에 세계보건기구가 발암성으로 지정한 물질도 있었다. 다른 공정에서도 백혈병 위험 인자로 알려진 벤젠이 검출되는 등 유해물질이 적지 않았다.

이 판결의 파장은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국내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게 됐고 다른 직원들이 진행 중인 산재 인정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4만 5천 명의 근로자들에게도 불안감을 안겨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삼성전자는 직원들의 질병을 개인 질병이라고 주장해 오던 그간의 자세에서 벗어나 전향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업장 환경을 조사, 화학물질이 근로자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화학물질 사용 억제, 환기 시설 개선 등에 나서야 하며 치명적인 질병을 얻은 근로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자세도 갖추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근로자들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기업이나 공단이 근로자의 병을 개인 질병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산재로 인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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