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 10년에 걸쳐 현장답사로 '순흥향맥' 펴낸 안무열 옹

마음 속 뿌리찾아 역사 재현 "글쓰기는 정신을 풍요롭게 하죠"

조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는 1457년 영주 순흥에서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 불리는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났다. 왕위 찬탈세력은 당시 흉흉한 민심 때문에 6개월 만에 사건을 종결하고'세조실록'엔 사건 연루자 14명만 처형했다고 전한다.

"실록의 각 사건은 무릇 작성자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정축지변만은 작성자 이름이 없습니다. 이건 그 내용이 왜곡됐다고 볼 수 있는 증거입니다."

순흥 도호부읍지 '재향지'와 '금성대군실기' 등에 의하면 '그때 순흥은 금성대군의 사건에 연좌돼 도륙당한 부민들로 시산혈해를 이루었고 죽계천 30리가 피로 물들었으며 주변 30리 안에는 닭과 개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이는 집권세력의 무지막지한 죄악을 고스란히 고발하는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사건 이후 순흥은 226년 동안 역향(逆鄕)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올해 일흔아홉의 안무열 옹. 안 옹은 마음속에 신앙처럼 새겨왔던 관향지 순흥의 자연과 역사적 배경, 학문, 정치적 성향 및 정신과 문화사적인 관계를 서지적 측면에서 규명한 630여 쪽 분량의 4x6배판'순흥향맥'(順興鄕脈)을 지난달 펴냈다.

'순흥향맥'은 1장 순흥의 자연부터 7장 순흥의 성씨와 인물에 이르기까지 순흥부지, 연려실기술, 장릉지 등 다양한 서지학적 접근을 통해 당시 상황과 생활상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자료수집에만 10년이 걸렸습니다. 현장답사와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고 그래도 확인이 안 되면 해당 마을로 일일이 찾아가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옛 이야기를 들었죠. 한문으로 된 서지자료도 120여 종을 참고했고 왕조실록과 서지자료를 비교'분석하면서 내용이 다른 부분에 대해선 각주를 달았습니다."

안 옹이 저술한 것은'순흥향맥'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전에도 5명이 함께 펴낸 930여 쪽의'대구향맥'을 비롯해 농업정책과 수필, 기행문을 섞어 엮은 '오하산고 1, 2, 3' 등 5권의 책을 저술한 바 있다.

환갑을 넘겨 글쓰기를 시작해 18년 동안 6권의 책을 쓴 그는 서지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니다. 경북 영천이 고향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안 옹은 1954년 공직에 입문했으나 5'16때 고초를 겪고 공직생활을 그만뒀다. 이후 야인 생활을 하던 중 49세 때 축협중앙회 간부직 시험을 거쳐 10년간 직장생활을 하게 됐고 축협 재직시절 월간 '축산'에 9년간 고정 투고를 하게 됐다. '오하산고'(梧下散稿) 1, 2, 3은 이때의 글을 모은 책이다.

"다행히 글재주가 있었던지 월간 '축산'의 기고문 중 13편은 축산정책 전문자료로 활용되기도 했죠. 특히 퇴임 막바지에 쓴 '축협발전의 금후 대책'이란 논문은 국회사무처에서 연락이 올 정도로 전문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죠."

축협을 퇴임한 안 옹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글쓰기를 해볼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순흥향맥'에서 밝혔듯 현재의 회헌 안향 선생의 세거지로 알려진 소수서원 자리는 공간적으로 약 2㎞ 정도 차이가 난다.

또 세조의 조정에서 단종이 목매 자살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사당한 후 강물에 시신이 던져졌다는 것.

"역사는 이렇듯 집권세력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에 철저한 서지적 고증과 확인 가능한 일은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순흥향맥'이 나온 후 그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많은 격려전화를 받았다. 서평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동안의 힘겨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능력이 닿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요. 결코 펜을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거죠."

안 옹은 '순흥향맥'을 처음 유가지(3만원)로 냈다. 이전까지의 책은 모두 무가지였다. 원고는 모두 육필로 썼다. 그래서일까. 그와 나눈 1시간여 시간은 묵향 속에 있는 듯했다. 오롯한 선비정신. 안 옹에겐 그런 선비의 묵향이 묻어났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