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따돌림과 전관예우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면 누구나 고문관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고문관은 한 부대 내에서 훈련이나 내무생활을 제대로 못 해 동료들을 단체로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병사를 일컫는 군대 속어이다. 이런 병사의 행동이 계속되면 선임들은 대체로 당사자를 열외(列外)시켜 위험을 미연에 방지했다. 군대에서 열외는 특정 상황에서 당사자를 제외시켜 주는 행위를 말하며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따돌림보다는 배려의 성격이 짙다.

기수열외(期數列外). 우리나라 해병대 출신이 아니면 생소한 용어가 강화도 해병대원 총격 사건을 계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정 해병에 대해 선임자들이 후임 대우를, 후임자들이 선임 대우를 해주지 않는 기수열외는 앞에서 언급한 열외와는 큰 차이가 있다. 당사자의 인격을 말살시켜 버린다는 점에서 범죄행위와 다름없다. 계급보다 기수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해병대에서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고, 후임자들이 반말을 하거나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할 때 당사자가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신약성서에서 유래)이 적용될 여지가 전혀 없다. 당한 사람을 도와주려 들었다간 본인도 찍히기 때문이다.

집단 따돌림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부터 학교를 중심으로 열병 앓듯이 번지더니 지금은 더욱 다양화'지능화되고 있다. 특별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예외적인 사안이 아니라 각 조직'단체에서 일반화하는 추세다.

따돌림의 결과는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연결돼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다. 이번 해병대 총격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집단 따돌림은 대부분 소단위 집단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최상층부의 지시나 감시'감독이 잘 미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 보니 대의명분이나 정의보다 소속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멀리 있는 지휘관보다 가까이 있는 선임이 더 무서운 것이다.

퇴임 후 자신이 속했던 조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이 두려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한 달여 남겨두고 사표를 던진 검찰총장의 사례는 어떤 경우일까. 인간성 말살을 부르는 기수열외도, 대통령에 대한 항명마저 불사하게 만드는 전관예우의 병폐도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