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해병대가 깊은 적막감에 휩싸여있다. 포항 해병대 1사단은 부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고 간부들은 모여 앉으면 한숨부터 내쉰다. 한 장교는 "하루 자고나면 사고가 터지니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겠다. 우리 내부가 이렇게까지 곪아 있었던가 하는 자괴감이 앞선다"며 "1949년 해병대 창설 이후 최고의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해병대가 연평도 포격사건과 독립성 강화로 위상을 한껏 높여가던 와중에 최근 잇따른 발생한 각종 사건으로 '사고집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유의 강한 전투력과 용맹성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도 해병대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병대는 '후진적 병영문화로 인한 총체적 위기상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달 4일 강화도 해병부대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김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만인 10일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정모 일병이 가혹행위로 추정되는 문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외에도 해병대의 여객기 오인사격까지 더해 해병대의 총체적 기강해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해병대 예비역 출신 강모(46) 씨는 "신세대 장병들이 외부에 비친 해병대의 용감하고 멋진 모습을 보고 자원 입대하지만, 자대에 배치돼 복무를 하는 과정에서 괴리감을 느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훈련소에서는 동기들끼리 가혹행위 없이 규정대로 훈련만 받으면 되지만 자대에 배치된 후부터는 선임병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악습(가혹행위, 기수열외)에 부딪히고 고민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장교는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해병대는 타군에 비해 보급과 복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앞세워 강한 군기와 정신력만 강조해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해병대를 모델로 철저하게 성과 위주, 전투력 중심의 군대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병대도 이번에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를 위해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구타 등 가혹행위 시 처벌을 강화해 일벌백계로 다스리겠다는 방침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기수열외와 작업열외 등 악습이 사라지도록 기수 체제가 아닌 부대편제표(계급, 직책)에 따른 병영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장병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보내 근황을 알리는 등 장병들이 군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소통'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해병대 1사단 한노수 공보실장은 "병영문화를 개선해 신세대 장병들이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해병대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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