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희 시인의 '겨울 청령포'는 한 발 물러선 사람의 시선으로 쓴 시다.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빠르게 달려가 기다리는 대신,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서 간다. 행여 비를 맞을세라 아침부터 우산을 꼼꼼하게 챙기고, 비 피할 처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대신 비를 맞으며 느리게 걷는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막히는 길과 미끄러지는 자동차를 걱정하는 대신 눈사람처럼 눈 속에 선다.
20, 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속도와 첨단, 지식과 정보에 휘말려 우리를 잃어버렸다. 시인은 속도와 첨단과 회색벽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등뼈가 없으면 끝장인 줄 알겠지만, 담쟁이는 등뼈 없이 찬바람 부는 허공을 더듬으며 올라가고, 등뼈가 없어 땅바닥에 기어다닐 것 같지만, 능소화는 맹목의 사랑으로 종일 서서 하루해가 저무는 걸 지켜본다. 당신은 문을 잠가 놓았고, 나는 문 밖에 서서 찬비를 맞고 있지만, 비 그친 밤하늘은 칠흑처럼 어둡지만, 나는 별빛으로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며 당신을 지키는 가등(街燈)으로 선다.
가물어서 강은 비었고, 내 기도는 허공을 돌다가 돌아오고, 칼날 같은 바람은 뼛속으로 파고들지만, 언젠가는 언 입술이 풀리고 말문도 열릴 것임을 안다.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아침 햇살을 입질할 때면 먼데서 물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솔희 시인은 역사의 현장의 둘러보며, 그 우울하고 슬펐던 날에 대해 노래한다. 그 현장은 누군가가 뜨겁고 슬프게 살다가, 서럽게 떠나간 장소다. 시인은 핏빛 어린 현장을 바라보며, 그곳에 순백색 들꽃이 필 날을 기다린다. 111쪽, 8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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