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골목 없으면 대구경북 공장이 다 멈춰요."
단일 산업용품 골목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구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 대구역네거리의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까지의 1㎞ 거리 양쪽으로 빼곡히 5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점포 앞 물건을 실어나르는 트럭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다. 판매물품도 공구, 호스, 농기구, 베어링 등 산업용품 전반을 망라한다. 북성로 공구골목에서 대구경북 산업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목에는 산업용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골목의 역사 덕분에 골목 가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다. 1938년 별표국수 공장으로 시작한 삼성의 효시 '삼성상회'가 이곳에 있었고 일제강점기부터 저울을 팔아온 '대원상사'는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09년 순종황제가 대구를 찾았을 때 걸었던 어가길도 이 골목에 있다.
◆일제강점기 번화가가 공구골목으로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최대 번화가였다. 조경회사 '스기하라 합자회사', 목욕탕 '조일탕'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즐비했고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했던 '미나카이 백화점'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동성로' 같은 장소였다. 한 70대 상인은 "내가 어릴 적엔 미나카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를 구경하러 수학여행을 오기도 했다"며 예전을 떠올렸다.
지금도 태평로 쪽은 일제강점기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가게가 많다. 저울판매점 '대원상사'도 그중 하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하던 사업을 넘겨받아 3대에 걸쳐 지금까지 운영되는 가게다.
본격적으로 공구골목이 형성된 것은 해방 이후다. 1947년쯤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다 나온 폐공구를 모으던 수집상 11명이 달성공원 입구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지금은 그 아들인 2세대와 손자인 3세대, 그리고 새롭게 공구골목에 발을 들인 상인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사람 지나갈 공간도 없었던 70년대 전성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골목은 전성기을 맞았다. 제3산업공단, 이현공단 등 산업단지가 대구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산업용품들이 팔려나갔다. 짐을 실어나르는 트럭과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 구경꾼들이 뒤엉켜 골목을 지나기조차 쉽지 않았다. 상인들은 "역전파출소의 경찰들이 매일 골목에 나와 통행지도를 해야 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떼돈을 번 상인들도 수두룩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공구골목은 대구경북 산업과 부침을 함께했다.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대구경북이 침체에 빠지자 골목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98년에는 주차난을 피해 검단동 유통단지로 상당수 업체가 빠져나가면서 더 큰 위기를 맞았다. 최근에도 우후죽순 인터넷 쇼핑몰이 생겨나고 대기업의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진출 소식이 나오면서 골목 상인들은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반복되는 위기에도 공구골목은 건재하다. 산업용품 분야의 굵직한 회사들이 여전히 골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매출액이 2천500억원에 달하는 공구유통 분야의 전국 1위 '크레텍책임'과 그 뒤를 잇는 '케이비원 경복' 등 서울에도 진출해 있는 업체들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또 전동공구 판매상으로 유명한 '부원툴닉스', 장갑 전문업체 '목화표장갑'도 공구골목을 지키는 일등공신이다. 이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북성로로 향하고 있다.
◆60년 명성을 지켜가는 공구골목 상인들
골목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대구은행 북성로점을 중심으로 2개의 상인회가 각각 구성돼 있다. 두 상인회 모두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공구골목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우빌딩 쪽의 '북성상가번영회'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인해 입구가 막혀버린 골목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학용 북성상가번영회 회장은 "대중교통전용지구 인근의 약령시, 염매시장, 공예골목 등의 상인들이 모여 해결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 중 하나인 공구골목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달성공원 인근 '북성로상인회'는 회원업체들을 표시해둔 지도를 만들어 산업체들에 배포하기도 하고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는 골목 대청소를 하는 등 골목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골목상인들 사이에는 최근 희망적인 분위기가 돌고 있다. 중구 골목투어 코스에 공구골목이 포함돼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4년 개통예정인 도시철도 3호선이 북성로 근처를 지나가고 달성네거리에 도시철도역이 들어서면 전성기 못지않은 활기가 넘칠 것으로 상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김대식 북성로상인회 회장은 "주차장과 화장실을 만들어 골목을 찾는 손님들의 편의를 고려하고 골목 분위기도 바꿔볼 계획도 있다"며 "상인들의 의지가 대단하니 전성기를 재현하는 날도 머잖다"며 웃음 지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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