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사 이야기를 하자면 가슴부터 답답해진다. 뭔가 잘못돼 있고, 고칠 점이 많고, 마뜩잖은 일투성이여서가 아니다. 지난해 의료담당 기자를 하면서 '메디컬 프런티어'라는 시리즈를 했다. 우리 동네에도 훌륭한 의사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네들이 그저 의술이라는 철옹성 안에 살면서 뻐기고 잘난 척하기만 좋아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다고 말하는 대구에서 '메디시티'를 한다기에 거기에도 조금 보탬이 될까 싶어 일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정말 훌륭한 의사가 많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었고, '우리 동네'에 국한되지 않고 한강 근처에 있는 꽤나 유명하다는 의사들과 비교해도 뒤질 것 없고, 오히려 더 낫다는 믿음도 갖게 됐다. 기사를 읽고 문의하는 독자도 꽤 많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기사를 봤다며 부산, 마산에서 더러 전화가 오기도 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디시티 대구' 이야기를 해보자. 의사들과 꽤 많은 대화를 했다. 요지는 이렇다. "메디시티가 뭐야?" "지역 선도산업으로 의료를 육성해서 5년 후 전국 최고 의료도시, 10년 후 동북아 최고 의료도시, 15년 후 세계 3대 첨단의료산업도시 또는 의료서비스 도시를 만들자는 거지." 너무도 거창하고 꿈만 같은 미래상이어서 듣기만 해도 심박수가 올라갈 지경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초를 쳤다. "그건 왜 하는데?"라고. 아니 최고 의료도시를 만든다니까. "질문의 뜻도 모르느냐? 도대체 최고 의료도시를 만들면 누가 득을 보느냐고? 메디시티 대구를 왜 추진하느냐고?" 언성이 조금 높아진다.
글쎄 시민들이 득을 보지 않을까. 의료 수준도 높아지고, 그러면 외지에서 환자들도 더 많이 찾아오고, 음 그리고……. 하여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 다시 물음이 들어온다. "다 좋다고 치자. 메디시티는 누가 추진하는 거야?"
이번 문제는 객관식이다. 1. 의사들 2. 대구시 공무원 3. 시민들 모두 4. 메디시티 추진 및 실무 위원들. '1. 의사들'은 틀렸다. 왜냐하면 답답할 게 없으니까. 지금도 대학병원이나 잘나가는 중소병원에는 환자가 몰려든다. 건강검진받는 데 몇 달 기다려야 하고, 수술받으려면 대기순서 기다리다가 관을 짜야 할 형편이다. 가뜩이나 미어터지는 환자 때문에 골치 아픈데 무슨 환자를 더 유치한다는 말인가. '2. 대구시 공무원'도 정답이 아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이 업무를 맡고 있을 공무원은 없다. 하물며 대구시장도 바뀔 터인데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다. '3. 시민들 모두'는,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메디시티 추진에서 시민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KTX 타고 서울로 가지 말고 무조건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는 정도일까? '4. 메디시티 추진 및 실무 위원들'이 답이 아님은 너무 자명하다. 전담 직원도 아니고, 각자 할 일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왜,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메디시티 대구'라는 말이 나온 지 벌써 3년이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에라도 올라가는데, '메디시티 대구호'는 아직 항구에 정박 중이다. 아니 아직 배를 만드는 중인가? '메디컬 프런티어'를 하면서, 의료담당으로 의사들을 만나면서 '메디시티의 꿈'이 그저 황당한 판타지소설만은 아님을 믿게 됐다. 그런데 여전히 '메디시티 대구'는 '컬러플 대구'만큼이나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호가 됐다. 마지막 질문. 메디시티 대구의 1년 예산은 얼마나 될까? '5년 후 전국 최고 의료도시'를 꿈꾸는 예산은 1억5천만 원이다. 사무실은 없고, 전담직원은 한 명이다.
김수용(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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