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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스 유출된 안심 연근밭 시들어가, 시한폭탄 방치 동구청 "염소 저장 탱크 있는 줄도

8일 오후 농약공장 창고(왼쪽) 액화염소가스 유출로 피해를 입은 연근재배단지 현장의 연잎이 시들어 가고 있다. 주민들은
8일 오후 농약공장 창고(왼쪽) 액화염소가스 유출로 피해를 입은 연근재배단지 현장의 연잎이 시들어 가고 있다. 주민들은 "공장 철거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액화염소가스가 유출돼 대구 동구 연근재배단지가 큰 피해(본지 8일자 4면 보도)를 입은 것은 해당 업체의 불법 영업과 행정당국 관리 소홀이 빚어낸 인재로 드러났다.

농약 생산업체는 유독성 물질을 이용해 농약을 생산하면서도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동구청은 이곳에 염소가스 저장 탱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9일 대구 동구청에 따르면 이 업체는 1967년부터 염소가스를 이용해 파라티온 등 맹독성 농약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업체 측은 맹독성 물질을 보관하는 가스탱크를 설치하면서 관련 절차를 모두 무시했다는 게 구청의 얘기다. 고압가스안전법상 유독가스인 액화염소가스 저장시설은 관할 지자체에 신고를 해야 한다. 불법으로 저장시설이 사용되면서 정기 점검 등의 안전 절차는 모두 생략됐다. 인근 주민들은 수십 년간 시한폭탄을 안고 산 셈이다.

생산이 중단된 이후에도 액화염소가스 저장고는 그대로 방치됐다. 200ℓ 용량의 가스 저장고 2개 중 1개는 비었지만 다른 1개에는 염소가스가 3분의 1이나 남아있었다. 주민 김모(66'여) 씨는 "가스저장고의 밸브는 이미 누렇게 삭아 있었다"며 "만약 가스저장고가 화기에 노출됐다면 큰 재앙이 됐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더구나 2009년 12월 공장 가동이 중단된 이후에도 2년여간 단 한 차례도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등 무방비로 방치됐다. 동구청 관계자는 "농약 생산에 염소가스가 사용되는 줄 처음 알았다"며 "더구나 액화염소가스 저장소를 신고하지 않아 관련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더구나 제일화학은 과거에도 수차례나 농약 유출 의혹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이 업체는 지난 2008년 맹독성 물질을 비밀 하수관을 통해 금호강에 방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인근 주민 박모 씨는 "오래전에도 농약공장에서 폐수가 흘러나와 주변 논을 모두 오염시키면서 가구당 100만원씩 보상을 받은 적이 있다"며 "항상 농약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일화학 관계자는 "염소가스 저장시설을 구청에 신고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또 휴'폐업을 한 것이 아니고 잠시 가동을 중단한 것이어서 폐업 신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피해 농민들과 업체 간에 보상 시기를 두고 갈등도 일고 있다. 제일화학은 피해 농가 9곳이 소유한 연밭 9천90㎡(2천750평)에 대해 1억4천700만원을 올가을쯤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농민들은 보상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피해 농가 관계자는 "당장 죽은 연근을 뽑아내고 내년에 심을 연근 종자를 확보해야 하는 시기여서 당장 보상해 주지 않으면 내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염소가스=자극적인 냄새가 있는 녹황색 기체로 살균'소독 효과가 있다. 소량만 흡입해도 콧속을 충혈시켜 비염을 일으키고 눈물, 콧물, 기침 증상을 유발한다. 오래 흡입하면 피를 토하고 호흡 곤란까지 일으킨다. 고농도로 흡입하면 순간적으로 심한 호흡곤란을 일으켜 숨지기도 한다. 노동보건상 염소가스의 노출 허용농도는 1ppm이다. 이달 4일 대구시 동구 대림동 연근재배단지에서 대기 중에 유출된 염소가스 농도는 0.2pp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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