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은 무대 공연에서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다. 하지만 음향을 떼놓고는 공연을 상상할 수 있을까. "관객이 만약 잠깐 눈을 감아버리면 배우가 하는 행동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지만 음향은 무방비 상태에서 원초적으로 가장 빠르게 상황을 인식시키죠. 음향을 꺼버린다면 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도 보는 이가 웃을 수 있어요."
음향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현장을 지키는 여승용(30) 음향감독 및 작곡가. 그의 전공은 작곡이었고 현재도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일반적으로 작곡과 음향은 분리된 분야죠. 작곡가와 음향감독이 따로 있는 것이 보통이죠. 하지만 저는 작곡하면서 음향도 맡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구에서 드문 경우죠."
뮤지컬이나 연극에 대한 음악을 맡다 보니 자연스레 음향효과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컴퓨터음악 쪽 공부를 하면서 음향효과에 전문적으로 진출하게 됐다.
"2005년 연극 '도서관 가는 길' 음향을 제작했는데 그 작품이 제22회 대구연극제 대상을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고 음향에도 재미를 붙이게 됐죠." 이후 뮤지컬 '오버나이트'나 뮤지컬 '비방문 탈취작전' 등 다양한 뮤지컬과 연극 분야에 참여했다.
그는 공연 시작 전에는 음악과 음향을 만들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음향실에서 음향의 소리 레벨이나 핀마이크 소리 크기, 관객과 배우의 볼륨 크기 등을 예의주시한다.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 배우의 목소리를 키우고 어떤 부분에서 음악을 키우는지도 체크한다.
"음향을 맡고 있으면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사고가 종종 생기죠. 음향을 틀었는데 음향 CD가 갑자기 인식이 안 되는 경우도 있죠. 이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총소리가 나면 달려가는 배우가 쓰러져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총소리가 나지 않아 배우가 계속 달린 경우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식은땀이 절로 나오죠." 이럴 경우를 대비해 서로 다른 제조자의 음향 CD 2개를 준비해놓는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배우가 핀마이크의 전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끈 상태로 공연하거나 실수로 배터리가 별로 없는 핀마이크를 사용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대 뒤쪽으로 재빨리 뛰어가서 바꿔주기도 한단다. 그만큼 음향감독은 공연 내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직업이다.
그는 음향을 제2의 창작이라고 했다. 수많은 음향 샘플이 있지만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향 소스를 바탕으로 편집하거나 합성을 해 새로운 음향을 만드는 것이다. 가끔 샘플에 없는 음향은 직접 녹음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 아파트경비원 안내 멘트가 필요했는데 샘플이 없어 제 목소리로 녹음한 적이 있어요. 실제 화장실에 가서 샤워장면을 녹음한 예도 있고요. 6'25전쟁 장면에서 필요한 음향은 전쟁영화 가운데 일부를 녹음하기도 했죠."
여 감독은 가장 자연스럽게 들리는 음향이 가장 좋은 음향이라고 했다.
"한때 음향을 근본적으로 왜 만드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죠. 기계적인 음향도 많지만 결국은 사람이 만들고 듣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들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음향과 레코딩, 작곡, 편곡 등을 종합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지만 관객이 공연을 보고 재밌다고 호평할 때 뿌듯함을 느껴요." 여 감독은 오롯이 공연장 뒤편 음향실을 지키며 환하게 웃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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