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남의 벽' 허문 그대, 남풍당당

롯데백화점 대구점 화장품 매장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형우(앞쪽)
롯데백화점 대구점 화장품 매장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형우(앞쪽)'김영민(뒷쪽) 씨가 여성 고객들에게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삼성생명 남성 FC 1기로 입사해 활기차게 보험설계사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신중환 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삼성생명 남성 FC 1기로 입사해 활기차게 보험설계사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신중환 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여자라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남자라고 못 할 일 없죠."

직업세계에서 남녀 경계가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다. 직업에도 유니섹스(unisex)의 세계로 급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이 먼저 금녀의 벽을 깨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그 반대 현상으로 금남의 벽이 점차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

직업은 속성상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까지 부여해 이제는 남녀라는 성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때가 많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남성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자체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섬세하고 꼼꼼한 남성들이 여성의 직업 세계로 파고드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금녀의 벽은 허물어지지만, 금남의 벽은 높아만 간다'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았지만 이젠 이 말은 실질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이제는 유치원에 가도 남자 교사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아이 사랑에 남녀가 있나요?"라고 반문하며, 유치원에서 여성 교사 못잖은 역할을 한다.

여성들 역시 이젠 직업에 관한 한 남녀 구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백화점에서 여성 고객이 젊은 꽃미남 남성에게 메이크업을 받거나, 얼굴 마사지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뿐 아니라 병원에서 여자 간호사가 아닌 남자 간호사, 요양병원에서 여성 간병인이 아닌 남성 간병인에게 돌봄을 받는 일이 흔한 풍경이 됐다.

이런 흐름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여전히 남자라서 겪는 불편함이 많았지만 많이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직업 유니섹스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영민'이형우

'바비 브라운의 김형우와 에스티 로더의 김영민.'

롯데백화점 대구점 지하 1층 여성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 근무하는 꽃미남(?)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다. 이 둘은 매장에서 여성 고객들을 상대로 상품 소개 및 메이크업, 마사지 등 예전에 여성들만 하던 일을 하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직업이기에 이들은 여성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 고객들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여성과 같은 화장으로 얼굴을 뽀얗게 하고, 살이 찌지 않도록 특별 관리를 하기도 한다.

이 일을 2년째 하고 있는 김영민(25) 씨는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아직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마사지를 받거나, 메이크업을 받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꺼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성이 다르다는 편견 때문에 겪는 그 어색함을 없애고 있다. 그에게 한번 얼굴 마사지를 받아본 이들이 또 찾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아는 형의 부인이 저를 보고 꼼꼼하고 섬세해 이 일을 잘할 것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제게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6개월 동안 미용 분야를 공부했고, 롯데백화점 매장 브랜드 직원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 전공은 전기과였지만 지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경력 6개월의 이형우(25) 씨는 처음 2, 3개월은 남성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부담감을 느낀 일부 고객들이 여성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싶다고 하면, 전혀 싫은 내색 없이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자 서서히 자신감이 생겼다. 몇몇 여성들이 칭찬을 해주면 큰 힘이 되고, 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 씨는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제가 화장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오히려 조언을 해 줄 정도입이다. 이제 여자친구가 제게 화장품이나 화장에 관해 많이 물어보죠. 이런 남자친구는 잘 없죠. 때로는 여자친구를 여성 고객으로 생각하고 실습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제 직업에 만족합니다."

두 사람은 놀랍게도 스킨, 에센스, 로션, 아이크림, 영양크림, 비비크림 등 여성들이 바라는 모든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으며, 메이크업에 관해서는 전문가다운 지식을 갖고 있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고객을 맞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오후 8시 30분이 넘어서야 퇴근하는 이들의 하루 일과는 12시간은 여성 고객과 함께, 12시간은 자신과의 시간(수면시간 포함)이었다.

◆삼성생명 남성 FC 1기, 신중환

"고객의 재산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더 많은 기쁨을 전해주는 보험설계사 신중환입니다."

3년 전 삼성생명 남성 FC(Finantial Consultant'재무 및 보험설계사) 1기로 입사한 신중환(41'서대구지점 근무) 씨가 자신을 소개하는 홍보용 문구이다. 여성들이 대다수인 보험설계사 세계에서 첫 번째 남성 공채로 당당하게 입사했다는 것은 신 씨의 자랑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가 남성 보험설계사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삼성생명의 경우 올해 8월 기준 대구경북에 있는 남성 보험설계사는 202명으로 한 지점당 2.8명 정도다. 전체 설계사 2천500여 명 중 남성의 비율은 100명 중 7.7명 정도다.

아직도 여성들이 절대 다수인 보험세계에서 그는 입사 첫해 전국 신인들 1만여 명 가운데 254등을 차지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후에도 그 성과를 바탕으로 팀장, 부지점장으로 승진하는 등 여성들이 다수인 세계에서 잘 적응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지점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여성들 사이에서 잘 지내는 노하우가 있느냐'고 묻자, 신 씨는 "제가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여성들 간 심각하게 끝도 없이 얘기할 때, 저는 "아이고! 와 이래 덥습니까? 팥빙수 한 그릇 할까요? 제가 쏠게요"라고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일단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얘기를 또 풀어갑니다. 이런 부분이 여성들 세계에서는 청량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젠 여성들과 저 혼자 여행을 가도 제가 사회를 보고 분위기를 주도합니다.(하하)"

하지만 남성이기 때문에 겪는 애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 고객이 더 많은 현실 속에서 아무래도 집에 혼자 있는 주부들을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군(남편) 오실 때, 찾아뵐께요. 잘 상의해 보면 좋은 재무설계가 나올 겁니다."

이런 점도 있다. 삼성생명이 보험 역사에서 반세기를 보냈는데, 아직도 모든 교육자료나 책자, 팸플릿 등이 여성들을 위주로 되어 있어, 남성 보험설계사들에게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것. 교육자료에 나오는 보험에 필요한 화법 등도 모두 여성에게 맞춰져 남성 설계사들은 알아서 이를 남성화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한다.

인터뷰 막바지에 그는 "24시간이 고객이 시간이기도 하고, 제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얼마나 활동하느냐는 고객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1남 1녀를 키우며, 아내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으로서 금남의 벽에서 큰 성과를 내겠습니다. 잘 되겠죠? 제가 부드럽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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