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저희 재단은 개발도상국이나 북한에 무상으로 병원을 지어주거나 의사를 교육시키는 등 보건의료지원을 통해 질병을 퇴치하고 건강을 향상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로 일생을 헌신한 슈바이처 박사와 고(故) 이태석 신부의 '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홀몸노인을 위해 정부가 세운 '아리랑요양원' 의 초대원장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지난 3월 귀국했습니다. 요양원에는 구 소련 때 1937년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신 고려인 동포 가운데 혼자 어렵게 사시는 노인 어르신 40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재외동포는 약 700만 명이며, 중국'미국'일본 다음으로 구 소련권에 약 50만 명이 있고, 우즈베키스탄에는 가장 많은 20만 명이 있습니다. 흔히 '까레이스키'라고 불립니다. 이곳 고려인들은 1991년 소련 붕괴로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고 난 뒤 오갈 데 없는 '디아스포라' 즉, 유랑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이스라엘처럼 동포들을 흔쾌히 받아줄 여력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요양원은 못난 조국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50만 명 고려인에게는 잊혔던, 어찌보면 조국이 버렸고 잊었던, 조국과 민족을 되찾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기에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뜻깊은 일입니다. 저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훗날 세계를 무대로 한민족 시대가 오면 러시아어 상용 고려인의 저력이 펼쳐질 것을 믿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의 행복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천달러의 가난한 나라이지만 우리보다 더 즐겁게 사는 것 같습니다. 고려인들은 한 해 돈을 꼬박 모아서 돌, 환갑, 생일 등 축일에 잔치를 크게 열어서 남녀노소 밤늦게까지 춤추며 인생을 즐깁니다. 잔치로 세월이 갑니다. 노년, 중장년, 청년, 청소년, 어린이 따로따로 식으로 단절되고 삭막한 우리네 삶과는 딴판입니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한세상, 고려인의 삶이 무척 부럽습니다.
근래 우리나라 '국가 부흥지수'는 반 만년 역사상 최고치에 비해 '국민 행복지수'는 반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라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고농축성 스트레스 환자' 뿐입니다. 교육걱정, 집걱정, 직장걱정, 노후걱정, 인생걱정, 근래에는 정치걱정까지 한마디로 '걱정 공화국'입니다. 삶이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걱정에서 걱정까지' 입니다.
'걱정 공화국' 탈출법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동시에, 생각을 바꾸면 행복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중국의 공자도 우리 민족이 사는데 오고 싶다고 했고, 옛날 아랍문헌에 보면 아랍인들이 그 넓은 대륙 중국 땅보다도 우리 땅을 유토피아로 알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이 나라에 사는 게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역사상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1397~1450)은 불멸의 업적을 쌓았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불우했다고 합니다.
두 형을 제치고 왕이 된데다, 6명 부인 아래 18남 4녀의 자식을 두었지만 8남 2녀를 둘 정도로 금실이 좋았던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즉 장인이 아버지 태종에 의해 사사당하고 장모를 비롯해 처가 식구들이 노비가 되고, 외삼촌들이 대거 사사당하며 끝내 어머니 민씨의 유폐를 지켜보면서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피바람 속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유교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진 왕이었지만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궁궐에 절을 짓고, 직접 찬불가를 저술하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겠습니까. 지금이라면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세종대왕보다 행복합니다. 그때는 감칠맛 나는 자장면도, 가슴 시원한 맥주도 없었고. 고추재배 이전이니 얼큰하게 매운 음식도 없었습니다. 핸드폰도 없었고, TV도 없었습니다, 자동차도 없었고,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과거나 현재에도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높은 지위 사람은 보통 사람이 모르는 가슴 아픈 큰 걱정이 하나 이상 있을 것입니다. 약 100년 전까지 인간 평균수명이 40세 아래였고, 지금 빙하기도 아니고,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사는 것도 아니고, 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가난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데, 훨씬 더 잘 사는 우리가 행복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상도 계속 바꾸어야 하고 동시에, 당장 쉬운 게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이헌태(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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