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세계 최대 경제권인 유럽연합(EU)과 우리나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FTA가 가져올 우리 생활의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껏 우리나라는 칠레를 비롯해 아세안, 싱가포르 등과 FTA를 맺어왔지만 이렇게 큰 경제권과 무역의 문턱을 낮추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은 상당수의 고가 차량과 명품 브랜드를 비롯해 와인, 맥주 등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 많다. 아직 50여 일 남짓한 성적표를 따지고 성과를 따지기는 시기상조이지만 벌써 변화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일단 7월 한달 동안 유럽산 식품과 주류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등의 영향으로 사상 처음으로 대 EU관계에서 무역 역조현상(수출보다 수입이 크게 증가)이 나타났지만, 자동차 등에서는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물가폭풍 속 유럽산 식탁 침투
주부 강미정(35'대구시 북구 산격동) 씨는 요즘 벨기에산 냉동 돼지고기를 즐겨 사먹고 있다. 구제역 파동의 여파로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한동안 식탁에 돼지고기를 올리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한'EU FTA 발효 이후 대형마트마다 경쟁적으로 유럽산 냉동 돼지고기 물량 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강 씨는 "처음에는 냉동이라 조금 꺼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국내산과 가격차가 워낙 커 요즘은 외국산 냉동육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한'EU FTA 발효 효과를 서민들이 가장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품목이 바로 돼지고기이다. 100g당 가격이 2천300원까지 치솟으면서 '금겹살'로 불렸던 국내산 냉장 삼겹살에 비해 네덜란드와 벨기에, 오스트리아산 냉동 삼겹살이 100g당 800~1천원 선에 팔리면서 가격 고공행진을 방어하고 나선 것.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경우 수입 삼겹살의 판매량이 최고 8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냉동 돼지고기의 수입물량은 올해 7월 1만3천380t으로 작년 7월 4천243t에 비해 215%나 늘었다. 관세율 인하 폭이 2.3%포인트에 불과하지만 구제역 파동 등으로 국내산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와인 가격도 FTA 수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와인에 대한 관세(15%)가 철폐되면서 상당수 와인 가격이 종전에 비해 10~15%가량 인하된 것. 이탈리아산 와인 '간치아모스카토 2009년산'은 2만5천900원에서 2만2천500원으로 3천400원 내렸고, 지난해 6월 1만9천900원에 팔렸던 프랑스 와인 '노블메독 2009년산'은 1만6천900원으로 3천원 내렸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와인 매출이 소폭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마트는 "7월 한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 늘었다"고 밝혔다. 또 7월의 롯데마트 매출을 분석한 결과 유럽 와인은 전년대비 53.6% 신장했으며 수입맥주는 65.6% 신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관세청에 따르면 닭'오리 등 가금류(37%), 커피(16%), 치즈(44%), 와인(30%), 초콜릿(19%) 등의 수입증가율도 두드러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수입가격은 돼지고기 20% , 가금류 12%, 수산물 7%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인하 없어도 날개 단 명품 판매
한'EU FTA 발효 이후 유럽 여행자들의 명품 반입은 크게 늘었다. 이달 14일 관세청이 발표한 '7월 대 EU 여행자 휴대품 유치 실적'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EU(유럽연합)지역 입국자 가운데 400달러를 초과한 물품을 들여오다 적발되거나 자진 신고한 건수는 1천56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 791건보다 34% 증가했다. 특히 FTA 발효와 함께 8%의 관세가 사라진 시계와 핸드백은 각각 153%, 58%씩 증가했다. EU 지역에서 들여오는 여행자 휴대품은 한'EU FTA가 발효된 지난달 1일부터 1천달러 이하 물품에 한해 원산지를 증명하는 구매영수증만 첨부하면 무관세이거나 종전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런 명품의 판매 증가세는 국내에서도 여전하다. 이들 명품 브랜드들은 FTA 발효를 전후해 오히려 가격을 올리거나 상당한 기간이 흐르고 나서 소폭 인하 방침을 밝혀 '생색내기'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었다. 구찌는 "선적지가 EU 외 지역인 스위스이기 때문에 FTA에 따른 관세 혜택이 없다"며 기존 가격을 고수했고, 루이뷔통은 상반기에 두 차례 가격을 인상했으며, 프라다는 오히려 FTA 발효 이후 456개 품목의 가격을 올렸다. 에르메스는 주요 상품 가격을 7월 중순 평균 5% 인하했고, 샤넬은 5월 25% 가격을 인상한 후 이달 들어 평균 5%를 인하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배짱 가격 논란에도 수입 명품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 등 국내 4대 백화점에서 한'EU FTA가 발효된 지난 7월 1일부터 한 달간 판매된 루이비통, 샤넬, 구찌, 프라다, 에르메스 등 5개 명품 브랜드는 784억원어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FTA가 수입 명품 가격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매출액이 증가한 것은 고가 사치품에 대한 동경이 줄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가격 인하 기대감으로 억제된 수요가 있다 보니 앞으로 명품 브랜드의 매출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문턱 낮아
콧대 높던 유럽차의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독일 BMW 3 시리즈의 경우 4천530만~5천160만원(부가세 포함)이던 가격을 최대 850만원까지 깎아주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일부 유럽 브랜드가 FTA 발효 전부터 차값을 내리는 등 대대적으로 가격 인하 공세를 펼쳤다. 인하폭은 차종에 따라 최대 1천만원을 웃도는 것도 있지만,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4천만∼6천만원대 수입차량의 경우에는 인하폭이 1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FTA로 인한 관세인하 효과는 가뜩이나 상승 가도를 달리던 국내 수입차 판매에 날개를 날아준 셈이 됐다. 자동차 수입은 작년 7월 2억2천700만달러에서 지난달 3억4천800만달러로 늘었고 앞으로도 꾸준한 증가세가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유럽에서의 한국차 수출도 활황을 보이고 있다. 관세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29일까지 대(對) EU 자동차 수출은 4억5천100만달러로 1년 전 실적(2억4천500만달러)보다 무려 84% 늘었다. 상반기 서유럽에 9천666대를 수출한 현대차는 FTA가 발효됨에 따라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오는 2013년까지 유럽시장 연간 판매대수를 50만 대까지 늘려 현지 점유율을 5%대로 높이기로 판매 목표를 수정했다. 지난해 유럽에서 26만여 대, 올해 상반기 4만4천 대를 팔아 판매 순위 16위를 차지한 기아차는 2013년에 10위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지난달 유럽 판매실적도 작년보다 10% 가까이 늘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관세인하가 실제 적용되는 7월 선적 물량이 곧 유럽시장에 풀린다"며 "이에 맞춰 수출업체들도 차값 인하를 검토 중이어서 이달부터 FTA 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달 1일부터 발효된 한'페루 FTA 역시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수출 증가가 기대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2일 발표한 '한'페루 계기 페루 경제의 중요성'에서 "FTA 발효를 계기로 9%대의 관세가 폐지돼 자동차'TV 등에서 일본과 중국보다 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칠레 FTA 발표 이후 칠레 시장에서 국산차 점유율이 크게 증가한 만큼 페루와의 FTA로 승용차 등의 수출이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한'칠레 FTA 발효 후 칠레 시장에서 국산차 점유율이 2004년 15%대였지만 2010년 25%로 증가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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