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누에고치를 생산해 옷감을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선시대 왕후가 궁궐에서 직접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라는 의식이 있었고, 누에의 신을 모시는 선잠단(先蠶檀)을 종묘와 사직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누에와 뽕나무를 근간으로 한 양잠(養蠶)산업이 최근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산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양잠농가들은 입는 천연섬유에서 나아가 먹고 마시는 기능성 식품과 의약품, 의료용 신체조직, 화장품 등으로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
◆양잠, 미래 건강 의료산업으로=12일 오후 쌀, 곶감, 누에고치 등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 상주의 이연수(60'여'은척면 봉중리) 씨는 가을누에 생산을 앞두고 잠실(蠶室'누에 사육장) 청소와 소독에 한창이었다. 이 씨는 1만㎡ 뽕나무밭에서 키운 뽕나무 잎을 따다 530㎡ 잠실에 60상자(1상자=2만 알)가량의 누에를 키울 준비를 했다.
이 씨는 "일본의 한 연구소에서 화장품 개발에 필요한 누에고치 계약 요청을 해와 9월에 가을누에 생산에 들어간다"며 "누에고치의 단백질인 세시린, 피브로인 등 기능성 성분을 이용한 연구개발에 일본도 눈을 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누에똥(잠분)도 전라도에 있는 병원 관계자들이 약품 재료로 연구하기 위해 구입하러 왔다"고 했다.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의 최필환(53) 씨는 뽕나무밭 5만㎡를 가꾸고 있다. 그 가운데 3분의 1에서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재배하고 나머지는 누에 먹이용으로 쓴다. 지난해 누에 200상자에서 1천500㎏의 건조누에를 생산했다.
최 씨는 "누에환, 누에 엑기스, 뽕잎차, 동충하초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건강기능식품으로서 누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지난 20년간 누에농사를 지으며 계속 침체만 겪었는데 2, 3년 전부터는 생산량과 소득이 10∼20%씩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양잠산업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수출액이 2억7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값싼 생사가 수입되고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약점으로 인해 급속히 하락세를 겪었다. 급기야 1999년 잠업법이 폐지되면서 관련 조직과 기구가 축소되는 등 사양화의 길을 걸었다.
이렇듯 하향세를 보이던 양잠산물 생산액이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2010년 경북지역 양잠산물 생산액은 약 57억원으로, 2009년에 비해 11.8%가 늘었다. 특히 기능성 산물의 생산액이 크게 늘었다. 수번데기는 600%, 오디는 87%, 건조누에 26%가량 생산액이 급증했다. 경북도는 양잠 생산액을 2013년 80억원, 2015년 100억원으로 차츰 늘려갈 예정이다.
생산액이 반전된 것은 무엇보다 누에와 뽕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기능성을 살린 제품들이 나왔다. 1995년 누에분말을 이용한 항당뇨 식품을 시작으로 누에 동충하초, 강장제인 누에그라, 뽕나무 열매를 이용한 오디와인, 오디즙, 오디잼, 뽕잎차 등이 선보였다. 누에고치 단백질이 첨가된 비누, 화장품, 염모제, 치약 등도 나왔고, 2009년에는 실크 인공고막도 개발됐다.
◆재도약을 위해=정부와 지자체는 미래성장형 양잠산업에 대해 정책적인 지원에 나섰다. 2009년 제정된 '기능성 양잠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는 2015년까지 500억원을 집중 투자한다. 경상북도 역시 '양잠산업육성 5개년 계획'을 세우고 276억원을 들여 기능성양잠산업으로 재도약시킬 방침이다.
경북도는 먼저 생산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누에용과 오디용 뽕나무를 구분 육성해 보급하고 우량묘목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맞춤형 누에품종을 개발하고 있고, 비닐하우스 형태의 간이 잠실을 현대화할 계획도 잡고 있다. 저온유통체계를 구축, 영천에 기능성 양잠산업 생산유통시범단지를 조성해 양잠산업을 육성할 세부 목표도 세웠다.
경북잠사곤충사업장 안대현 장장은 "올해로 개청 100주년을 맞은 사업장은 뽕나무 96종, 누에 86개 품종을 보존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며 "양잠산업 부흥을 위해 누에씨 생산, 애누에 공동사육, 뽕나무 묘목 생산, 누에동충하초 보급, 누에병 검사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노시갑 천연섬유학과 교수는 "양잠산물 생산자들이 노령화됐고 관련 전문 교육기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며 "앞으로 지속적인 생산이 이뤄지려면 관련 전문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는 무작정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FTA 같은 시장개방에 대비해 농가 특성과 현실에 맞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 양잠농가의 생산기반을 튼튼히 하고 시장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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