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을 수 없는 새벽이었다. 컴퓨터를 켰는데, 홈페이지로 설정해 놓은 곳에 뉴스 사진이 한 장 보였다. 막대기로 공을 받쳐 놓은 것 같아 그냥 지나치려다가 흠칫했다. 한 어린이가 누워 있는데, 팔다리는 작대기 같이 세워져 있고, 배와 등가죽은 땅에 붙어 있고, 그나마 땅에 붙을 수 없는 가슴뼈 부분만 불룩 솟아 있는 사진이었다. 그 가슴뼈 부분을 공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들은 이 어린이가 손발을 꿈쩍일 수 있으니 살아 있는 거라고 믿으십니까?"
거의 20년 전 매일신문 문화면 '매일춘추'에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쓴 적이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위한 성금을 걷고 있었다. 그 글 마지막 구절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소말리아여, 관심이 집중되었을 이때 빨리 딛고 일어서야 한다. 사람들은 인류애란 이름으로 참 짧은 관심만 보이고 말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어떤 신문 광고에, 서울에 있는 한 수녀원에는 26명의 수녀들이 한 달 50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그 수녀원 성당에 비가 새니 도와주자는 글이 나왔다. 여기서 그 광고 본래 취지만큼이나 주목되는 일은 26명의 한 달 생활비 액수이다. 수녀원이니 먹는 것은 농사지어서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1인당 한 달에 2만 원을 가지고 사는 셈이다. 거의 불가사의에 가까운 숫자의 생활비이다.
아마도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은 수도원에서 물건을 공유하고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그처럼 내 것을 각각 보존하지 않고 자신이 쓰지 않는 동안 타인이 쓰도록 한다면 인류에게 지금처럼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물 중 유일하게 옷 입는 동물인 인류가 장 안에 보관해 둔 옷을 함께 나누어 입을 수 있다면 그렇게 큰 장도, 그렇게 큰 집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영리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저축할 줄 안다. 자기가 당장 써야 하는 물건 외에도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까지 저장한다. 게다가 정착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들고 다니라면 다 버려야 할 것도 모아 둘 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신용화폐나 냉장고 등 저장 기술은 매번 발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자신의 소유물이 스스로 지고 다닐 만큼보다는 훨씬 많아졌다.
생태계는 너무나 오묘해서 각종 생물에게 조화를 유지할 만큼만 번식하여 그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주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제한점을 극복해 버렸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법칙을 어기어 균형을 깨뜨리는 일을 늘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편리함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만큼 깊이 반성해야만 한다. 만약 냉장고가 없다면 찌개 끓인 것이 남았을 때 옆집 사람을 주기는 훨씬 쉬울 것이다. 또 준 것은 언제 어디서든 돌아온다. 수박을 주면 그것이 삶은 감자가 되어 우정을 담아 되돌아온다. 지금 내가 저장해 두려고 하는 바로 그 물건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또 죽는 이를 살릴 수도 있다.
명절은 나눔의 기회이다. 조상과 나누고 형제 친척과 나눈다. 또 수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런데 우리의 나눔은 내 형제와 부모에만 머무를 수 없다. 요즈음은 인류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므로 나눔의 범위도 점차 넓어진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해 가는 증좌(證左)이다.
달은 한 번 뜨면 천 개의 강을 비춰준다. 우리 조상은 이 진리를 이미 15세기에 '월인천강지곡'으로 노래했다. 오늘의 달도 천강(千江)을 비춰주니 8월 한가위에 보름달이 비취는 모든 곳은 우리의 범주이다. 그들은 직접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달을 통해서 서로 닿는 친구이다. 내가 지금 쌓아두는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전부 나눈다 해도 우리는 겨우 본래의 자연 조화를 지키는 수준이 된 것이리라. 접시 위에 남는 떡에 내 이웃의 얼굴이 새겨지는 한가위면 더더욱 좋겠다.
김정숙(영남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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