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구와 다르다고 惡이고 후진국인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류한원 옮김/뿌리와 이파리

9'11 테러 직후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2011년 봄, 빈 라덴이 죽었고, 재스민 혁명의 물결이 아랍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빈 라덴이 사살됐을 때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밤새 축제를 벌였다. 9'11 이후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적국의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기 위해 용의자를 고문해도 좋다, 적을 감금하고 가족에게 연락하지 못하도록 해도 좋다, 테러리스트를 도운 적국의 시민을 체포해도 좋다는 의견이 크게 늘어났다.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파괴한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이다.

지은이 타밈 안사리는 "이것은 단지 서구의 시각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아왔으며, 개인주의적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통과 문화를 어지럽히는 이질적인 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싸우는 대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과거이며, 무슬림이 피를 바치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상적인 이슬람 공동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또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을 '민주화 운동'으로 보는 시각은 철저히 서구의 시각, 서구의 내러티브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규정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서구인들은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서구의 일부가 된다는 가정 아래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강제로 끼워 맞추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서구세계가 이슬람 세계에 주입하려고 애쓰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슬림들에게는 자신들이 지켜온 오랜 전통과 가치, 부족 네트워크를 잘라내는 칼로 느껴질 뿐'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무슬림의 인식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과 사뭇 다르다. 어쨌거나 무슬림과 서구인은 인식의 출발이 다르고, 따라서 양자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상대를 이해하거나 신뢰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서구 언론에 비친 이슬람주의자들의 이미지는 자살폭탄테러범, 여성의 머리에 검정 천을 씌우는 문화,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 테러리스트다. 한국사회 역시 이슬람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매우 제한돼 있고,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을 서구 언론에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상당히 편향돼 있을 수 있다.

책은 '오늘날 서구와 이슬람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적개심 뒤에 숨은 움직임과 사건들을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1천500년의 역사를 지닌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칼리프의 일생에서 출발해 그들이 펼친 광대한 제국의 시대, 최근 몇 세기 동안 이슬람을 황폐하게 만든 이념운동의 흐름, 9'11을 낳은 근대의 복잡한 갈등, 이슬람 공동체의 진화 등을 체계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야기이며, 서구의 세계사에서는 삭제됐거나 외면됐으며, 때로는 척결의 대상이 된 이야기이지만, 1천500년간 세계사의 하나의 커다란 줄기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는 "지하드주의자의 자살폭탄 테러를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반대편의 시각을 활짝 열어주는 귀중한 도구"라고 평했다.

지은이 타밈 안사리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1948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불 대학교 교수였고,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다. 1964년 미국으로 이민했고, 줄곧 세계사 교과서 편집자로 일했다. 잡지칼럼, 소설, 어린이 책 등을 쓰고 있다.

607쪽, 2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