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정치의 제자리 찾기

요즘 세계적으로 국가의 흥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은 패권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중국의 발전은 계속되고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일본의 부활은 가능한가 등이다. 미국과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일본의 부활에 관해서는 비관적인 분위기다. 그렇다고 세계 속에서 일본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영국 런던 정경대학, 2004년 몰) 교수는 약 20년의 시차를 두고 '왜 일본은 성공하였는가'(1982년)와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1999년)라는 두 권의 책을 발표했다. 같은 사람이 정반대의 주제를 다룬 그의 책 제목은 일본의 명암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성공 이유를 서구 기술과 일본 정신(에토스)의 결합으로 파악했다. 그 이후 일본의 성공 스토리는 1980년대 후반까지는 전세계를 풍미했으며, 팍스 자포니카(Pax-Japonica)의 도래를 예견했다. 그러나 모리시마는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에서 일본은 2050년에는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교육, 금융, 정신적 황폐 등을 열거하면서 무엇보다 정치의 무능을 일본 몰락의 근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무책임, 무신념, 무정책, 즉 정치적 지도력 부재가 일본을 몰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간 나오토 정권이 14개월 만에 끝나고, 이달 2일 노다 요시히코 정권이 새로 출범했다. 일본은 최근 5년 동안 6명의 총리가 바뀌었으며, 평균 재임 기간은 10개월 정도다. 패전 직후의 혼란기를 제외하고 일본 총리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30개월 정도였다. 총리 재임 기간이 이처럼 짧아진 것은 정치가 매우 유동적이며, 불안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로 여당의 대표가 곧 총리다. 여당인 민주당의 대표는 당소속 국회의원, 서포터스, 지방의원이 선출하지만, 이번처럼 임기도중 보궐선거의 경우는 당 소속 국회의원만으로 선출한다. 이번 당대표(총리) 선거에는 5명이 출마했다. 선거 직전 요미우리 신문이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상 48%,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12%,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9%, 마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5%, 가노 미치히코 농업상이 2%의 지지율을 보였다. 마에하라의 지지율은 나머지 후보를 전부 합친 것보다 높았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마에하라는 3위로 탈락하고, 가이에다와 노다의 결선 투표에서는 지지율이 훨씬 낮은 노다가 당선되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은 후보부터 제거해가면서 10%미만의 지지를 받은 노다를 총리로 옹립한 것이다. 파벌의 역학관계 산물이다. 파벌의 균형 위에 얹혀 있는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치에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적인 것'(Japanese system)으로 긍정 평가하며, '관제탑 없는 공항' '여왕벌 없는 벌 떼'에 비유했다. 관제탑이 없어도 공항은 비행기 이착륙에 큰 혼란 없이 제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상승 곡선을 그리며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일본적 시스템이 잘 작동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침체하면서 정치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50년 이상 지속된 철옹성 같던 자민당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당 정권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이 정치를 필요로 할 때, 정치는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민의 지지와 총리 선출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 국민이 직접 총리를 선출하는 총리 공선제(公選制)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그러나 천황제와의 충돌 문제, 의원내각제의 본질을 해친다는 이유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요즘 안철수 신드롬이 거세다. 양극화 문제, 복지 논쟁, 무익한 이념 논란 등 기존 정치가 국민의 기대를 수용하지 못한 탓이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 교수의 등장이 아니라,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성환(계명대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