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장효조와 최동원

약속이나 한 듯 1주일 사이에 세상을 떠난 장효조와 최동원은 여러모로 닮았다. 양 선수는 2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나란히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구상고, 한양대를 거친 장효조와 경남고, 연세대 출신인 최동원은 당대는 물론, 우리나라 야구사를 통틀어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최고의 타자와 투수였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으나 그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 때문에 1년 늦은 1983년에 프로에 입문한 것도 같다. 그리고는 아마추어의 최고에서 프로의 최고로 군림했다.

전성기 때 받은 질시도 비슷하다. 거만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말수가 적은 장효조는 꽉 다문 입과 예리한 눈매 탓에 오만하게 보였고, 최동원은 너무 당당한 태도와 본의든 아니든 아버지의 지나친 부성애(父性愛) 탓에 언론에는 부정적으로 비쳤다. 최동원은 노조 결성과 다름없는 선수회 파동의 결과로 1988년 11월 삼성 선수가 됐다. 한 달이 지나지 않은 12월에는 장효조가 롯데로 갔다. 투타 최고의 스타가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것이다.

그 뒤에 걸은 길도 비슷하다. 장효조는 1992년 롯데에서, 최동원은 1990년 삼성에서 은퇴했다. 장효조는 1994년 잠시 롯데 코치를 했지만, 야인으로 머물다 2000년 삼성에 돌아와 타격 코치, 스카우트, 2군 감독을 지냈다. 반면 최동원은 아예 야구계를 떠나 방송 활동을 했다. 10년이 더 지난 2001년 잠시 한화 투수 코치를 맡았으며, 2005년에 다시 한화 코치로 복귀했다. 양 선수는 주변에 병명조차 알리지 않는 자존심을 보이며 암과 투병했고, 꼭 같이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는 1주일 차로 영면했다. 최고의 선수에서 은퇴 뒤의 초라한 행로, 암 투병, 2군 감독이라는 직책까지 장효조와 최동원은 우연치고는 너무나 닮은 인생을 살다가 갔다.

양 선수는 필자와 아주 작은 인연이 있다. 신출내기 기자이던 1988년 12월, 프로야구를 취재하며 맺은 것이다. 당시 업무를 시작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장효조가 롯데의 김용철과 맞트레이드됐다. 이미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던 최동원은 이를 거부하고 미국에 있는 상태였다. 이미 1월부터 예고된 것이었지만 장효조의 트레이드는 큰 뉴스거리였다. 기사는 서울에서 먼저 터졌다. 간판선수의 트레이드도 몰랐다고 부장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은 것은 물론이다. 경위를 추적해 보니 원래는 대구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다. 트레이드 계약을 마친 날, 삼성구단의 홍보팀 간부가 서울에서 기자들과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이미 결정한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고, 조간신문의 기사 마감 시간까지 요리조리 피하며 버텼다고 했다. 통상적인 마감 시간을 넘긴 오후 11시 반쯤 시인을 했는데, 한 스포츠 전문지 기자가 회사에 전화해 윤전기를 세우고 나서, 1면 톱기사로 보도한 것이었다.

트레이드 이유에 대해 당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고, 고액 연봉에 대한 부담과 장 선수가 고향인 부산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했다"고 설명했다. 10년도 더 지나 삼성의 스카우트로 있던 장효조와 만났을 때 슬쩍 이야기를 했더니 "다 지난 얘기"라면서도 "초'중'고와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모두 삼성에서 했는데 뭐 때문에 롯데에서 은퇴하고 싶었겠습니까?"라며 씁쓸해했다.

최동원과는 1990년 초 삼성의 투수 전지훈련장이던 필리핀에서 가까워졌다. 최동원은 트레이드에 맞서다 1989년 후반기부터 삼성에 합류했다. 그는 기자에게 "한물가니까 기삿거리도 안 되지요? 사고 치고 기삿거리 하나 만들어 줄까요?"라며 먼저 농담을 걸 정도로 늘 쾌활했다.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소문난 스타치고는 덜렁거리고 수다스럽고 소탈했다. 원래 그랬는데 대외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인지, 아니면 전성기가 지난데다 연고 구단으로부터도 버림받자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려고 변신을 꾀한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까만 후배들과 함께한 전지훈련 보름여 동안 최동원의 입가에는 늘 특유의 너털웃음이 걸려 있었다.

투수들로부터 던질 곳이 없다고 불평을 듣던 장효조, 쳐 볼 테면 쳐 보라며 한가운데로 강속구를 꽂아 넣던 최동원. 살아서는 스타였고, 이제는 전설이 됐다. '삼성과 롯데의 감독 자리에 한 번 서지 못하고 야구 인생을 접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鄭知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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