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내용 외교관

축구 기본 중시 히딩크 정 보다 실력 우선, 영어 의사소통 불가능 외교관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모토 아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4강 신화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히딩크 리더십'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있었는데 공정하고 엄격한 선수 선발이라는 그의 철학이 단연 돋보였다.

그는 90분을 뛰지 못하는 선수는 아예 제외했다. 비록 잔재주는 떨어지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뛰는 선수를 기용했다. 너무나 당연한 축구의 기본을 중시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연, 혈연, 선후배 관계가 대표선수 선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한국 축구계 관행을 완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저런 선수들로 과연 서구 축구를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기본을 중시한 히딩크의 철학이 적중한 것이다.

히딩크는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정(情)이 많은 한국인에게 국제 무대에서는 '정'보다 '실력'이 우선임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후인 지금, 우리는 과연 기본에 충실해져 있는가.

최근 우리나라 외교관 10명 중 4명이 영어로 정확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국회의원이 외교통상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외교부 자체 영어 능력 판정에서 대상자 1천564명 가운데 38.7%인 607명이 최하위 등급인 4, 5등급에 해당했다는 것이다. 4, 5등급이면 의사 전달을 방해하거나 오류가 빈번한 정도라고 하니 외교 무대에서 무슨 활동을 했겠는가. 더구나 유창하게 영어 대화가 가능한 1등급은 1.6%로 26명에 불과하다고 하니 대부분 '국내용' 외교관인 셈이다.

외교관의 영어 구사는 축구선수가 90분을 뛸 수 있는 능력과 같다. 이런 불량 외교관이 양산된 원인은 신규 채용 때 기초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9월 당시 유명환 외교부장관이 딸 외교관 특채 비리 논란 끝에 낙마했고, 지난 3월에는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들이 중국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나라 망신시킨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알 만하다.

국민에게 가장 믿음을 줘야 할 외교관의 자질이 이 정도라면 우리 사회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상생 발전'보다 '기본에 충실한 사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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