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국 전통음식이라고 인정하는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기준으로'전통 우리음식' 이라고 규정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으며, 수천 년간 쌓인 한민족 음식전통이 녹아있는 음식' 쯤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은이는 그러나"현재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한국음식의 형태는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조리방식에서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음식도 더러 있지만 드물고, 조선의 부엌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주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주방이 바뀌었다는 것은 결국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말과 통한다.
주방의 구조와 조리도구, 화력의 변화뿐만 아니라 산업의 발달, 브랜드의 탄생, 자부심, 허영심, 부끄러움, 국제화 등에 따라 음식문화는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대표적인 예로 두부를 들 수 있다. 1980년대까지 한국인은 갓 만든 두부를 먹었다. 어지간한 동네마다 가내 수공업형 두부공장이 있었고, 거기서 밤새 두부를 만들어 새벽에 골목을 다니며 내다팔았다. 동네 구멍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두부도 하루를 지나면 맛이 상해 팔 수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한 식품회사에서 두부를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해서 판매하는 방법을 내놓으면서 '장기보관'이 가능해졌고, 두부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가내 수공업형 두부 영업권이 무너지고, 브랜드로 무장한 '포장두부'가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책은 '이 회사는 전국의 여러 두부공장을 하청기업으로 삼아 한 브랜드로 묶었고, 그렇게 동네 수공업의 맛있는 두부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유독 브랜드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네에서 갓 만든 신선한 두부를 버렸지만, 일본에는 동네 두부가 여전히 건재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파리에 사는 주부들은 빵을 사다 묵히지 않는다. 식사를 할 때마다 빵집에서 신선한 빵을 사서 먹는다. 식사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두부도 그렇다. 막 사온 두부를 먹어야지, 밤을 넘긴 두부 따위를 먹을 수 없잖은가"라고 말한다.
변한 것은 두부시장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렸지만, 언제부터인가 고급음식인 한정식이 발달했다.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불고기의 기원을 고구려 시대라고 말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불고기라는 이름은 1930년대 등장했다. 삼겹살 구이 역시 굉장히 오랜 전통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프로판가스가 등장함으로써 널리 퍼진 음식이다. 전통음식으로 불리는 것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웃나라와 교류, 산업의 발달, 새 음식의 유입 등 변화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뒤 주둔한 미군부대의 잔반을 가져다 끓인 꿀꿀이죽에서 유래했고, 소갈비구이는 졸부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며 등장한 '가든'을 통해 번창했다.
책은 대표적 한국음식으로 알려진 떡, 막국수, 새우젓, 부침개, 도토리묵, 간장과 된장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하고, 외국음식이라고 알려진 소바, 오뎅, 자장면, 단무지, 피자, 햄버거, 커피가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는지 살펴본다. 여기에 소, 돼지, 닭, 소금 등 중요한 식재료가 한국음식에 끼친 영향도 하나씩 짚어간다.
지은이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왜 먹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결국 한국인이 어떤 궤적을 통해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는 길" 이라며 "한국인이 먹는 음식을 살펴보면, 한국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87쪽, 1만4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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