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젖 먹이는 부인도 흉기 폭행…대구, 수도권 외 '최다'

대구경북 가정폭력 하루 2.5건

대구 가정폭력상담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주부 이승희(가명'45) 씨의 다급한 목소리.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매일 술독에 빠져 살던 남편은 날마다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1년 전 재혼한 그는 태어난 지 100일이 갓 지난 아이를 끌어안고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아이가 있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중에도 흉기를 들이대며 이 씨의 온몸을 때렸다. 충격을 받은 그는 결국 가출을 결심했고 현재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 쉼터에 머물며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경북 한 지역에서 식당 종업원 일을 하며 가정을 돌보던 주부 김수민(가명'49) 씨는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둘러대는 남편 때문에 치가 떨린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장애를 입은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몇 년 전 남편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한 아들(13)이 정서불안 장애의 일종인 '틱 장애'를 갖게 된 것. 남편의 폭력을 피해 찜질방을 전전하며 버티던 그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판단, 이달 6일 가정폭력상담소에 남편의 폭력을 신고하고 정든 직장을 그만둔 채 집을 떠났다.

최근 6년 동안 대구경북 지역에서 하루 평균 2.5건의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대구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가정폭력 빈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조사됐다.

19일 국회 행정안전위 김태원 의원(한나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2011년 7월 전국에서 모두 5만7천107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했다. 같은 기간 대구는 3천387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해 경기(1만5천40건), 서울(1만4천776건), 인천(3천399건)에 이어 광역단체 중 네 번째로 가정폭력이 많은 곳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경북은 1천756건(3%)으로 조사됐다.

대구경북에서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 특유의 정서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사)대구여성의전화 부설 배미옥 가정폭력상담소장은 "지역 특유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큰 원인"이라며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고 자란 남성들이 가정폭력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 소장은 또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 및 캠페인이 절실하다. 아울러 현재 50여 명밖에 안되는 쉼터내 피해자 수용규모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구대 현진희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가정폭력을 사생활이라고 치부하고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지 않는 점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며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가정폭력이 잦은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계속 안고 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6년간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은 6만3천955명. 이중 구속은 460명(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는 전체 5천133명 중 35명(0.06%)이 구속되는 데 그쳤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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