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 영어와 한국어 사이

이곳 캐나다에서는 매년 9월이면 새 학년이 시작됩니다. 제 딸은 이제 6학년이 되었고 둘째도 얼마 전에 유치원에 입학했습니다. 한국보다 6개월이 빠른 셈이지요. 많은 부모들이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자녀의 학년을 선택하는 것에 고민을 합니다. 한국에서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이곳에 오면 가을에 새 학년이 시작되어 6학년 1학기를 맞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5학년 2학기를 어쩔 수 없이 건너뛰게 됩니다.

게다가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교육청이나 학교에 자녀의 학년을 1학기 낮춰줄 것을 요구하곤 합니다. 처음에 저도 1학기를 낮춰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담당선생님이 같은 나이에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학년에서 공부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는 노력하면 되지만 친구 관계는 여기서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학교서는 같은 반 친구지만 나와서는 한 살 많은 형, 언니이고 동생이면 한국인만이 가지는 애매한 관계가 성립합니다. 이 또한 사춘기를 지나는 학생들만의 고민이지만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됩니다.

처음 학교에 가서는 조용히 앉아 있고 수업만 듣고 오던 딸도 이제는 제법 친구를 만나면서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학교 클럽에도 가입하는 등 생활이 무척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 대신 통역을 해주며 상점에 가서 질문을 하고 때로는 불평도 합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분풀이를 이제야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생활 영어만 잘 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알아야 할 상식과 교육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특히 영어는 읽기와 쓰기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캐나다에서 학교만 보내면 영어는 자연히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내 아이가 적어도 두 가지 언어는 동시에 유창하게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영어 실력 쌓기에만 치우친 생각과 교육으로 인해 놓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영어 공부만 강조하다 보면 아이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거나 친구 사귐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로 한국에 있는 친구와 채팅을 하고 게임 또는 TV 보기에 몰두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아서 주위의 외국인 친구와 교류를 기피하거나 자기만의 공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현지에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조기 유학이나 이민을 오지만 많은 학생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생활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런데다 각 가정마다 가지는 각자의 고민도 있습니다.

첫째아이는 제 나이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기 위해 책을 읽고 단어 외우기에 힘쓰고 있지만 정작 한국어 공부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에 온 이후 한국어 구사 능력이 멈춰버린 듯합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속담, 사자성어는 벌써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영어 공부하는 시간만큼 한국어 공부도 계속할 수 있도록 신경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어 실력을 끌어 올리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 보니 그에 비례해 한국어 공부에 공백이 생깁니다.

둘째아이는 겨우 엄마, 아빠를 말하는 수준에서 캐나다에 와서 늘 가족과 함께 지낸데다 제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완벽한 대구 아이 수준의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눈치와 몇 가지 필수 단어를 아는 수준입니다. 이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영어 실력은 늘겠지만 한국어를 공부할 기회와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대화 상대가 엄마, 아빠, 누나밖에 없어 일상적인 한국어 대화는 가능했지만 이제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서 선생님과 친구가 생겨 대화 상대 및 시간이 한국어보다 영어로 접할 기회가 점점 많아집니다.

영어와 한국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지만 욕심을 내다가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요. 저는 제 아이들이 외국에 오래 살아 영어는 잘 하면서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우리말을 더 잘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아이들의 영어와 한국어 공부를 어떻게 현명하게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그런데 뾰족한 방법이 없어 딜레마에 빠져 있답니다.

khj09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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