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던 여름도 저 멀리 물러나고 바야흐로 가을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제법 찬기운이 느껴지면 겨울 채비를 서두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 그 겨울 채비 중 싱글족들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우 벨트'와 '늑대 목도리'를 챙기는 일이다.
내 반쪽을 찾는 일은 싱글 남녀에게는 지상 최대의 명제와도 같다. 나만을 사랑해 줄 안정적인 애정의 대상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다. 특히 남성들은 가을이면 이런 '짝'을 찾고 싶은 욕구가 급상승한다. 가을은 이성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남성 호르몬이 1년 중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딘지 모를 가슴 깊은 곳에서 '연애 좀 하라'는 지령을 받고 있는 가을 싱글 남녀들. 하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그 반쪽을 찾는 일이 녹록지는 않다. 조건도 맞아야 하고, 짜릿짜릿한 '삘'(feel)도 와야 한다. 따져야 할 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보니 아무리 이리저리 탐색전을 펼쳐봐도 내 님은 어디에 있는지 쉽게 감이 오질 않는다. 이번 가을, 싱글 처지를 면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짝'까지
내 반쪽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품고 사는 청춘남녀들이 많다 보니 '이성교제'는 TV 프로그램의 단골 아이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실 연애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소재가 아닌가. 내 연애사야 당연히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생의 기쁨이자 활력소이겠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남의 연애담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짝짓기'를 소재로 다룬 프로그램은 1995년 선보인 '사랑의 스튜디오'가 시작이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나와 사랑의 작대기를 이어가며 자신의 짝을 찾았다. 이후 '천생연분' '나는 펫'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리고 올해는 '짝'이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일반인 출연자들은 제작진이 만들어놓은 '애정촌'에서 이름 대신 등 번호를 부르며 생활한다. 일주일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을 함께 보내며 자신의 반쪽을 찾는 것이다.
17년간의 세월 동안 프로그램은 생기고 없어지길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 속에 변하지 않는 흐름 하나는 분명하다.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짝'의 경우에는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출연자들이 '남자 1호' '여자 1호' 등으로 불리며 자신을 감춘 채 호감을 확인한 뒤 이틀이 돼서야 자신의 직업과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외모가 호감을 이끌어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조건(직업'나이'배경)은 짝을 선택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결과는 뻔하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다 보니 첫 이미지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직업을 알고 난 뒤의 호감이 급격히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되는 '러브스위치'는 한층 더 적나라하다. 싱글녀 30명이 1명의 남자를 세워두고 여러 가지 조건들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가차없이 포기(불을 끄는 것)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남성 출연자의 조건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여성 출연자의 스위치가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선호도를 즉각 알 수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남성의 '스펙'이 뛰어나면 여성들은 스위치를 잘 끄지 않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의 조건
이런 '이성교제' 프로그램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은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을 보며 감정을 이입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를 시청하는 대다수 남녀들의 선호도도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닥스클럽 대구지사 이진우 지사장은 "사실 남성은 아무리 '심성이 고운 여자'라고 부르짖어도 몇 번 맞선을 진행해 보면 결국 요구하는 것은 '외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성을 따지는 것도 외모가 일단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에나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들의 경우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다. 특히 결혼을 자신의 인생을 위한 투자로 보는 여성들은 더욱 심하게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다. 이 지사장은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무조건 전문직을 소개시켜 달라. 꼬시는 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의사와 결혼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아무래도 대다수의 여성들이 남성의 직업이나 가정의 경제력 등을 최우선으로 따지고 그 다음에 외모나 가정환경 등을 따진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면서 이런 '조건'도 좀 더 까다로워지고 다양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여가시간이 늘어나자 '함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 지사장은 "특히 날씨가 청명한 가을이 되면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을 찾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까다로운 경우가 '등산을 좋아하는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사례였다. 여성 회원 중에는 등산을 취미로 하는 여성이 드물다 보니 원하는 조건에 맞춰주기가 쉽잖았던 것.
최근에는 '스타일'을 따지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점점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 속에서 30대 여성의 경우 몇 살만 나이가 많은 남성을 만나도 배가 나오고 후줄근한 차림의 아저씨 포스를 풍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사장은 "어떤 경우든 남성의 성의 없는 옷차림은 여성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여성이 남성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많이 준비를 하는지는 생각해 보면 내심 이해가 갈 법도 하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자가용이 없는 남자는 질색'이라고 딱 잘라 요구하는 여성도 많다. 이 지사장은 "최근 한 여성에게 남자 공무원을 소개시켜 줬는데 첫 만남에서 꽤 호감을 보였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 곧장 퇴짜를 놓고 말았다"며 "그 이유가 바로 자가용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요즘은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필수'라고 말하는 사회. 이 지사장은 "실제로 결혼적령기의 남녀에게 차량이 없으면 데이트에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남자 찾기 어려운 대구
대구는 변변한 기업들이 많지 않다 보니 전문직이나 공무원, 교사 등을 제외하고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남성을 찾기가 꽤 어려운 도시다. 이런 이유로 짝을 찾길 원하는 여성들은 넘쳐나는데 이에 걸맞은 남성들을 구하기는 힘든 것.
경쟁력 있는 신랑감이 부족하다 보니 소위 '마담뚜'(중매쟁이) 노릇도 힘들다. 소위 '스펙'이 괜찮은 남녀들의 소개만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A(52) 씨는 "수첩에 신붓감은 줄을 서 있지만 신랑감은 정말 구하기가 힘들다"며 "오죽하면 중매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남성 명단을 교환해 맞선을 주선하기도 할 정도겠는가"고 푸념했다.
결혼의 조건으로 '종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이모(30'여) 씨는 최근 어릴 때부터 다니던 동네 교회를 포기하고 지역의 한 유명 교회로 옮겼다. 교인의 숫자가 많은 만큼 청춘남녀들이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전략 역시 여의치 않았다. 청년부 모임에 들었지만 이곳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80%가 넘고, 외모 괜찮고 나이 어리고 조건까지 갖춘 여성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었던 것. 이 씨는 "새로운 남성 한 명이 나타나면 정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불꽃을 튀길 정도"라며 "친구들끼리도 자주 푸념하지만 대구에서는 괜찮은 조건을 갖춘 남성을 찾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혼기 꽉 찬 싱글녀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무원 김모(36'여) 씨는 "눈높이를 낮춰서 결혼을 할까 고민도 많이 하지만 막상 남성을 만나보면 '내가 꼭 이러고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또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여성 싱글족 중 독신을 꿈꾸는 이들은 정말 드물며,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추는 것이 여의치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ABCD 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학력과 직업이 다 괜찮은 '골드 미스'가 왜 결혼을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즉 남성은 자신보다 학력 등 여러 조건에서 조금 부족한 상대자를 찾는 전통적 결혼관에 따라 A급 남성은 B급 여성과, B급 남성은 C급 여성과 결혼하기 때문에 결국 결혼시장에 남는 것은 A급 여성과 D급 남성이라는 이야기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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