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들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싸늘하다. 미혼모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아니라 '부도덕한 아이'라는 사회적 낙인이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한 미혼모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미혼모들의 설 자리마저 뺏어 버린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은 미혼모들에게 오래전 따뜻한 손길을 내민 친구가 있다. 바로 대구혜림원이다. 대구혜림원이 미혼모들의 보금자리가 된 지도 벌써 25년이 흘렀다. 사반세기 동안 미혼모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온 대구혜림원의 발자취를 조명했다.
◆대구경북 최초 미혼모시설
대한사회복지회가 1986년 9월 대구혜림원을 개원했다. 1980년대 산업화'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미혼모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이들을 돕기 위해 대구혜림원을 설립한 것. 대구혜림원은 대구경북 최초의 미혼모시설이다.(2007년 미혼모자시설로 변경) 대구혜림원이 문을 열 당시 미혼모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가도 1989년이 되어서야 모자보건법을 제정할 정도로 미혼모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다. 어느 때보다 미혼모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던 시절, 대구혜림원은 앞장서서 미혼모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미혼모들에게 출산과 산후조리'취업 알선 등 필요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5천300여 명의 미혼모자들이 대구혜림원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났다.
이달 23일 대구혜림원은 개원 2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대구혜림원 식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기념식에서는 자원봉사자 및 유관기관 감사패 전달, 양육미혼모들 자조모임인 '사랑모아(母兒)' 발대식 등의 행사가 열렸다.
박미향 대구혜림원 원장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을 품어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눈 세월이었다. 대구혜림원이 청년기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겠다. 특히 미혼모들이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미혼모 복지이념 수립에 더욱 매진하는 대구혜림원이 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구혜림원을 일군 사람들
25년 동안 대구혜림원이 한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힘을 보태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구혜림원은 상근 직원과 자원봉사자, 위탁모들의 공동 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혜림원의 살림을 맡고 있는 상근 직원은 9명으로 원장을 비롯해 사회복지사'간호사'조리사'생활지도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원봉사자는 대구혜림원을 이끄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현재 대구혜림원에는 '친정엄마봉사단'이 조직되어 있다. 15명의 봉사자들이 출산한 '딸'을 위해 아기를 목욕시키고 젖병을 소독해주는 친정엄마처럼 미혼모들의 산후조리를 도와주고 있다. 위탁모는 아기가 입양되기 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개월까지 아기를 맡아 키우는 일을 한다. 자신의 아기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위탁모들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현재 위탁모로 활동 중인 사람들은 13명이다. 지금까지 위탁모를 맡은 사람은 74명에 이른다.
박대숙(51'여) 씨는 15년 동안 위탁모 일을 하고 있다. 위탁모 일을 하고 있던 이웃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아기들의 해맑은 모습에 반해 위탁모가 됐다. 지금까지 박 씨가 돌본 아기는 수백여 명. 그녀는 스스로 아기 돌보는 일에 중독되었다고 말한다. "아기가 없으면 마음이 허전합니다. 아기가 입양되고 새 아기가 집에 오기까지는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을 자다 깨어난 경우도 많습니다." 수백 번 이별을 했지만 여전히 아기를 떠나 보낼 때는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박 씨는 "힘이 닿는 한 위탁모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자립 프로그램 운영
대구혜림원이 미혼모들을 단순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자립을 돕는 기관으로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학업 및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것. 3년 전 직업적성탐방 교육을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미혼모 역량강화 프로그램인 '희망 JOB자'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6명의 미혼모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성과를 보였다. '희망 JOB자' 프로그램과 별도로 올해 대구혜림원에 정보기술자격(ITQ)과 예쁜 글씨(POP) 자격증반도 개설했다.
미혼모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여건도 마련했다. 올해 대구혜림원은 대구시'경상북도교육청으로부터 단기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대구혜림원은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과목 강사를 고용해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대구혜림원에서 받은 수업은 정규수업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미혼모들이 지속적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또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거리 캠페인과 함께 '바늘구멍에 사랑 꿰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바늘구멍에 사랑 꿰기'는 미혼모가 낳은 아기들에게 사랑의 배냇저고리를 선물하자는 캠페인으로 지금까지 500여 명의 시민들이 미혼모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원장은 "미혼모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은 꼭 필요하다. 교육은 미혼모들에게 강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격증 취득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 미혼모들이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며 "또 미혼모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것은 미혼모들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미혼모들이 부모이자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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