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땅콩으로 객관식 문제 하나 풀어봅시다.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주변에는 항상 수컷들이 흘린 소변 자국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지린내가 지독하게 풍겼습니다. 이에 몸서리치던 청소부 아줌마가 다음과 같은 카피를 써서 소변기 앞에다 붙였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크게 효과를 거둔 것은 어느 것일까요? ①소변기 밖으로 흘리면 가위를 사용하겠음! ②제발 한 발 앞으로, 그리고 정조준 부~탁해요. ③당신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④(소변기 안쪽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고) 파리를 맞춰 보세요.'
정답은 ④번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까닭은 '호모 루덴스'의 세계, 즉 '놀이'에 있습니다. '놀이'는 인간 문화의 본질로서 자발적 행위가 그 중요한 특성입니다. '논다'는 것은 유희나 오락을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행위이지요.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꾀는 방법으로, 엄중한 경고나 간곡한 호소 또는 부드러운 은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스스로 나서서 재미있게 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클 수밖에요. 실제로 ④번처럼 조치했더니 소변기 밖으로 떨어지던 소변의 80%가 줄었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라지요.
독서에도 노는 독서와 놀지 못하는 독서가 있습니다.
노는 독서는, 독자가 작자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격정적으로 토론하며 대결을 벌이는 읽기입니다. "나는 이런 뜻으로 읽었는데 당신도 그런 뜻으로 쓴 거 맞아?" "이 대목은 영 이해가 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썼지?" "조금 더 내려가 봐. 그렇게 쓴 이유를 알게 될 거야." "아닌데 이건 당신이 잘못 생각한 거 아냐." 적어도 이렇게, 작자와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 줄 아는 독자가 바로 놀줄 아는 독자이지요.
놀지 못하는 독서는, 독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은 뒷전으로 돌려놓고 풍문과 눈치에 의존하여 사지선다형의 정답을 고르듯이 글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의미 또는 가치를 뒤적거리는 수동적 읽기입니다. 잘난 사부님 앞에 꿇어앉은 못난 제자의 모습이지요. 이처럼 놀지 못하는 독서에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의미 생성이나 주체적인 판단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독서 교육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바로 노는 독서 교육의 실패를 의미하며, 그 원인은 학교의 독서 수업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를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가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개미요'라고 한 학생이 대답하면 모두 '맞았습니다'라고 외치며 함께 박수를 치지 않았던가요. 이 상황에서는, '베짱이의 바이올린 소리가 개미의 힘든 노동을 위무해 주지 않았을까'라는 또 다른 생각은 발붙일 여지가 없었지요. 그 만장일치의 박수소리로 텍스트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도무지 놀 틈을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대학교의 교양국어 시간에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가르치면서 '님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의 99%가 조국이라고 대답하는, 놀지 않는 독서의 전형적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겠지요.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입니다. 그런데 가을이 아니더라도 초등학생에서부터 대기업의 CEO에 이르기까지 "제발 이것 좀 해라!"라고 사회와 국가가 한목소리로 권장하는 것은 오로지 독서뿐이랍니다. 요즘은 경제학자들까지 나서서 독서력이 사회간접자본으로서 경제 발전의 원천적인 힘이자 가능성이므로 청소년들의 독서력을 기르는 일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주명리학을 하는 역술인들도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적선, 명상, 명당 잡기에 이어 독서를 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독서 교육입니다. 놀지 못하는 독서에서 노는 독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피동적인 수용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의미 창조행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정답을 찾기 위한 시험 범위 읽기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생성해 내는 읽기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교양을 높이고 인격을 도야하는 등 비록 엄숙한 욕구에서 출발하더라도 독서는 어떤 놀이, 어떤 기쁨, 어떤 쾌락이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문제 하나 더 드려 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청개구리' 우화를 아시지요? 자, 이 우화를 떠올리는 순간, 다음 중 어느 것이 먼저 뇌리에 떠오릅니까? '①고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지. ②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효도해야겠다.' 만약 ②번을 선택하셨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놀지 못하는 독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김동국(시인/대구두산초등학교장)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