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40.독자가 보낸 사연(16)-딸에게

경쟁으로만 내몰아서 미안해 다시 마주앉아 눈빛을 나누자

교복 입은 학생이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이렇게 낯선 광경이 될 줄이야. 요즘 동네 놀이터에 가 보면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아이와 엄마들밖엔 없습니다. 유치원만 다니기 시작해도 바빠집니다.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장 등등을 다니느라 하루 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해거름까지 골목 어귀를 우르르 몰려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를 하는 모습은 이젠 흐려진 옛날 사진 속에서나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때 몰려다니던 친구들도 이젠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겠죠. 사진=이언국(제4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준특1석) 글=김수용기자
교복 입은 학생이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이렇게 낯선 광경이 될 줄이야. 요즘 동네 놀이터에 가 보면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아이와 엄마들밖엔 없습니다. 유치원만 다니기 시작해도 바빠집니다.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장 등등을 다니느라 하루 해가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해거름까지 골목 어귀를 우르르 몰려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를 하는 모습은 이젠 흐려진 옛날 사진 속에서나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때 몰려다니던 친구들도 이젠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겠죠. 사진=이언국(제4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준특1석) 글=김수용기자
행복은
행복은 '마음의 젊음'이다. 마흔을 훌쩍 넘겨 버린 지금, 가끔씩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왠지 이 나이에 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쑥스럽지만,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기에 목청껏 불러 본다. 젊음이란 신체적 나이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의 나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한 평짜리 삶 속에서 백 평짜리 행복을 얻는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혹시 한 평짜리 삶 속의 귀퉁이에만 머물러 있진 않았는지 둘러본다.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젊은 마음'을 찾아보자. 글/일러스트=고민석 komindol@msnet.co.kr

자녀에게 편지를 써 본 적이 있습니까? 가끔 학교에서 주최하는 부모교실에 참석해 보면 뜬금없이 '아들'딸에게 쓰는 편지'를 주문합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사실 가족이라고 하지만 부부간의 대화도 부족한 마당에 어린 자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직 어린 자녀는 대화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춘기쯤 접어들면 시간이 없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 가고, 학원 돌다가 밤늦게 돌아오면 그저 "피곤하지. 어서 씻고 쉬어라"는 말이나 건넬 뿐이죠.

몇 해 전, 고교생을 상대로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한 주 뒤 다시 돌아온 수업시간에 부모님의 반응을 물었더니 "눈물을 흘리셨어요"라는 답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무뚝뚝한 남학생들이 쓴 그 편지가 뭐 그리 감동적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속내를 담은 편지를 보며 가슴 울컥한 진심을 느꼈을 겁니다.

오늘은 한 애독자라고 밝힌 분이 보내온 '딸에게'라는 편지를 소개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보낸 담백한 글입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라면 다시 따스한 부녀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죠. 오늘 자녀에게 편지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딸에게

세상의 파도는 참 높고 험하더구나. 아직 어린 너에겐 이런 삶의 변명마저도 어렵게만 들릴 터. 한때 창밖을 바라보며 '언젠가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네가 알게 될 그 세상이 지금 너의 맑은 눈으로 보는 세상 그대로일 수 없음을 알기에, 네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이 이치임을 알기에,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마치 숨겨진 진실이라도 드러나는 양 너를 속일 수도 없구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세상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처럼 속일 수도 없겠구나.

그래서 이제 고백하련다. 자신감이 부족한 어른들이, 배려를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협력보다 경쟁을 먼저 배운 어른들이 너희들을 좁디좁은 골목길로, 결국엔 거대한 담벼락이 막아선 외길로 몰아넣고 있음을. 그 길의 끝에 행복이 없음을 이미 알면서도 남들이 모두 따라가는 그 길을 택하지 않는 너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그저 맹목적으로 가라고 외치고 있음을.

사춘기에 접어든 너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본 지가 언제인지. 아니 아직 어렸을 때에도 '시간 없음' '피곤함'을 핑계로 너와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지. 초인종 소리와 함께 쪼르르 뛰어나와 기대에 찬 눈빛을 가득 보내던 네 눈은 이제 아빠를 외면하고, 가끔 밥상머리에서 마주할 때면 마치 사랑이 식어버린 연인처럼 멍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네 키가 자라면서 아빠와의 눈높이는 점점 가까워지지만, 네 마음이 자라면서 아빠와 마주치는 네 눈은 점점 멀어지고 있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를 너로 키우지 못하고, 너를 다른 사람처럼 키우려고만 했구나. 시험 치고 돌아온 너에게 "고생했어"라는 격려보다는 "몇 개나 틀렸어?"라며 비난거리부터 찾았고, TV를 보며 깔깔 웃는 너에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라는 공감보다는 "네 할 일은 다했어?"라며 멀리 두기에 급급했지. "힘들다"며 손 내미는 너를 말없이 안아주기만 했어도, 아직은 작은 너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신 조용히 내려앉아 눈높이를 맞추기만 했어도.

마치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를 바라. 세상이 삭막하고 힘들다는 변명은 그만둘거야. 지금은 비록 그럴지라도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거야. 우리 딸! 세상에 처음 나와 흑진주처럼 까만 눈동자로 아빠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다시 만나고 싶어. 올가을, 함께 떠나는 여행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꾸나.

'행복을 찾아서'를 읽고 있는 한 애독자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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