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곳 어디서 많이 봤는데…" 대구도 알고 보면 '영화도시'

영화
영화 '모던 보이'의 동산의료원 촬영 장면.
계명대가 배경으로 등장한 드라마
계명대가 배경으로 등장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가 제작 지원을 한 영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가 제작 지원을 한 영화 '도약선생'
대구에서 대구의 자본으로 제작된 첫 극장상영용 상업영화
대구에서 대구의 자본으로 제작된 첫 극장상영용 상업영화 '기타가 웃는다'

이달 6일 개막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15년 만에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KBS월드를 통해 세계 70개국에 생중계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외 유명 배우들의 부산 방문도 줄을 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부산이 영화의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영화'드라마 촬영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의 절반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영화 촬영지만 모아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부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동안 대구에서도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촬영됐다. 대구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나 배경이 될 만한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단순 촬영을 넘어 대구를 배경으로 대구의 자본이 투입된 극장상영용 상업영화가 처음으로 제작됐다. 또 최근에는 대구시가 한류드라마 제작 지원 방침을 밝혔다. 대구에서 불고 있는 영화'드라마 제작 붐을 계기로 영화'드라마 촬영지 대구의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대구 배경 영화'드라마

'2011 대구 방문의 해'를 맞아 대구시가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제작비 일부를 지원한 한류드라마 '사랑비'가 대구시내 일원에서 촬영 중이다. 한류스타 장근석과 소녀시대 윤아를 비롯해 김시후'서인국'손은서'황보라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사랑비'는 1970년대 아날로그시대와 2010년대 디지털시대를 초월한 남녀간 순수한 사랑을 그린 20부작 미니시리즈. 내년 5월쯤 방영될 예정이며 초반 시청률을 결정하는 전반부 6회 정도가 올 연말까지 계명대와 경북대 캠퍼스, 계산성당 등에서 촬영된다.

이에 앞서 올봄에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가 달성군민운동장에서 촬영됐다.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 선수와 함께 달리면서 속도 조절 도와주는 스포츠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연기파 배우 김명민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상대역으로는 여배우 고아라가 출연한다.

지난해에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가 제작 지원을 한 영화 '도약선생'의 촬영이 대구스타디움을 비롯해 이상화 고택'수성유원지'대구체고'동촌유원지 등에서 이뤄졌다. '도약선생'은 장대높이뛰기 유망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올 6월 30일 개봉됐다.

계명대 캠퍼스에서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많이 이루어졌다. 계명대 캠퍼스는 영화 '동감''첫사랑사수 궐기대회''누구나 비밀은 있다''남남북녀''박쥐', 드라마 '모래시계''야망의 전설' '억세 바람''백야 3.98''에덴의 동쪽' 등의 촬영 무대가 됐다. 특히 담쟁이가 뒤덮인 이국적인 건물과 아름다운 캠퍼스 풍경이 극에 등장하는 명문사립고교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2009년 꽃미남 열풍을 불러일으킨 '꽃보다 남자'의 촬영지가 됐다.

계명대 동산의료원도 대구를 대표하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의료선교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동산의료원은 독립투사 이회영의 일대기를 조명한 KBS특별기획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을 비롯해 영화 '모던 보이''강적' '6월의 일기' 등에 배경 장소로 등장했다.

이 밖에 대구 계성고 도서관에서는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김사랑이 주연을 맡은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 2'28기념중앙공원 인근에 있는 테마파크 '코앤스타'에서는 SBS 드라마 '온 에어', 달서구 호림동에 위치한 한 모텔에서는 영화 '연애술사'가 촬영됐다.

◆대구를 소재로 한 영화'드라마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구에서 발굴한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2일 첫 방영된 SBS 드라마 '더 뮤지컬'은 서문시장 포목점 손녀가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 제작진은 지난해 9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서문시장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동성로 대구백화점 앞'대구역'대구보건대 인당아트홀 등에서 촬영을 했다. 제작사 필림통은 당초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한 제주도를 촬영지로 염두에 두었지만 대구가 뮤지컬 도시인 점을 감안해 대구를 촬영장소로 최종 낙점했다고 한다.

올 2월에는 1991년 발생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이 개봉됐다. 2007년 수술 중 각성 현상을 다룬 영화 '리턴'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규만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영화인 '아이들'의 시나리오 작업에만 무려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워낙 예민한 사건이고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 많은 고민을 했다. 가슴으로 영화를 찍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대구를 거점으로, 대구의 자본이 투입된 극장상영용 상업영화인 '기타가 웃는다'가 제작됐다. '기타가 웃는다'는 음악을 하는 36세 노총각과 연고를 알 수 없는 할머니가 뜻하지 않게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코믹터치 휴먼드라마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됐다.

◆흥행 성적표

부산에서 촬영되어 2001년 개봉된 영화 '친구'는 800만 관객이 관람했다. 2009년 개봉된 영화 '해운대'는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부산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면 대구에서 촬영된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 성적표는 어떨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영화는 흐림, 드라마는 맑음이다. 드라마의 경우 대박을 터뜨린 '꽃보다 남자'를 비롯해 '모래시계''온 에어' '야망의 전설''에덴의 동쪽'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됐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 뚜렷이 기억에 남는 흥행 수표가 없다. 지역 영화산업 활성화를 기치로 내건 대구 토종 영화 '기타는 웃는다'는 올 11월 개봉 예정이지만 흥행은 미지수다. '남남북녀'는 조인성이 출연했지만 참패를 면치 못했고 '강적'은 36만여명, '누가 그녀와 잤을까'는 4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또 '연애술사'는 100만 명, '동감'은 120만 명을 겨우 돌파하는 성적표를 거뒀다. 그나마 '박쥐'와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200만 명을 돌파했고 '아이들'이 188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체면치레를 했다.

◆영화'드라마 촬영 유치에 소극적인 대구시

드라마 '더 뮤지컬'이 촬영될 당시 지역에서는 뮤지컬 도시 대구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주인공이 대구 출신이라는 설정과 함께 구혜선'옥주현'최다니엘 등 초호화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기 때문. 하지만 드라마 대구 촬영이 끝난 뒤 대구시의 처신이 구설에 올랐다. 제작 지원 요청이 들어왔지만 대구시가 이를 거절한 것. 이에 따라 대구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 유치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대구시와 영화'드라마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칸 영화제 수상작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협조공문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아 동화사 로케이션이 취소됐다. 또 37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두사부일체'의 경우 제작진이 촬영지로 대구를 낙점하려 했지만 조폭 두목과 스승, 아버지가 하나라는 설정이 지역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됐다고 한다.

사기 사건에 휘말린 아픈 기억도 있다. 2001년 대구시는 대구 섬유산업을 주제로 한 영화 '나티 프로젝트' 제작 지원에 나섰다 곤혹을 치렀다. 제작업체 관계자들이 수십억원을 영화 투자 명목으로 받아 가로챘다가 무더기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구에도 영상물 제작팀과 관공서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영상위원회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영상위원회는 영상물 제작팀에게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주고 촬영에 필요한 행정적 도움을 주는 법인으로 현재 10여개 시'도가 영상위원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예산 등의 문제로 아직 영상위원회를 설립하지 못했다. 경상북도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6년 영상위원회를 발족시켰지만 예산 지원이 안돼 지금은 업무가 정지된 상태. 이에 대해 경상북도는 내년 안동에 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해 영상위원회 업무를 흡수할 계획을 밝혔다.

◆단편영화의 메카

부산이 상업영화의 1번지라면 대구는 단편영화의 메카다. 2000년 시작된 대구단편영화제는 지역 영화인 발굴'육성 및 독립영화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대구단편영화제는 매년 500~600개 작품이 출품될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11년 만에 전국을 대표하는 경쟁 단편영화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500~600개 작품 가운데 심사를 거쳐 경쟁부문에 올라 상영되는 영화는 20여 편에 불과하다. 대구단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이 독립영화인들에게 자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짧은 기간 대구단편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경쟁체제에 있다. 처음부터 비경쟁 영화제가 아니라 경쟁 영화제를 표방하면서 실력 있는 독립영화인들을 배출한 것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거의 무보수로 봉사하는 영화제 관계자들의 희생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대구단편영화제 예산은 불과 5천만원. 입상자들에게 수여하는 상금과 행사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부족한 돈이어서 영화제 관계자들이 보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손영득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대구단편영화제를 키우려고 해도 예산이 뒤따라주지 않아 여의치 않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구단편영화제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된 것은 묵묵히 힘을 보태준 관계자들의 희생 덕분이다"고 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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