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이 온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의 신이 언제 오는가 하는 것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없다." 독일 격언이다. 이 문장에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면서 수긍을 하지만 그 격언을 읽은 뒤 어떠한 삶의 변화도 없이 또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은 '글'로만 죽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과 죽어감'을 직접 돌보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죽음에 대한 어두운 오해'를 풀어야 하는 사명감을 느낀다. 평소 무관심했던 죽음과 죽어감이 실제 다가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폭력을 휘두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이야기 속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슬픈 죽음으로 인해 줄줄이 불행으로 연결되는 딱한 인생도 있었다.
이미 죽음이 등 뒤에 들이닥친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마지막을 돌보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건 참 잘 살아 오셨다고 격려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진정한 마지막 모습을 건강한 사람들에게 서둘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부터 자신의 마지막과 접촉하고, 건강할 때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봉사하며 죽음을 직접 배우게 하는 것이다.
나 역시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기 전에는 나의 마지막을 상상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의사로서 다른 사람의 죽음은 많이 보면서 정작 나 자신의 죽음은 서글퍼서 외면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예상치 못한 죽음이 다가오거나, 죽음을 떠올리는 자체만으로도 '인생의 실패, 의학의 실패'라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삶을 빼앗아간다. 사랑했던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는 첫사랑의 아픔처럼 '죽음은 어쩌면 삶으로부터의 완벽한 실연(失戀)'인 셈이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상처를 주는 죽음은 누가 뭐라고 해도 '폭력'이다.
어설픈 첫사랑처럼 죽음도 처음이기 때문에 어렵다. 예고편 없이 닥치는 죽음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세상을 먼저 떠나는 인생의 선배로부터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직접 죽음을 마주보는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호스피스 병동에도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처럼 어떠한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쉽게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도 주고 싶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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