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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vs '자유민주주의' 격론

'민주주의' vs '자유민주주의' 격론

중학교 역사교과서 개정 과정에서 촉발된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싸고 진보 보수학계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한국현대사학회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동 4·19혁명기념도서관 회의실에서 개최한 '2011 자유민주주의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대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 학계를 대표해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림 교수는 발제에서 "우리 사회에는 (보수와 진보 등) 2개의 진영이 있었다. 이념도 계층도 달랐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룬 건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옹호했다.

박 교수는 '역사주의'라는 관점에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래 1948년 건국헌법을 지나 5.16군사쿠데타 이전까지를 두루 살피면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 '민주공화국' 또는 '민주주의'에 있었으며, 더구나 그것은 미국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대 입장에 선 김용직 교수는 발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서구문명의 대표적 정치모델이며 다른 비자유 민주주의 체제보다 장기적으로는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체제"라고 역설했다.

다만,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반공주의라는 억압적 성격을 지녔던 때도 있었다고 부연하면서 이는 "분단체제의 전쟁으로서의 귀착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발제에 이은 패널 토론에는 보수 측에서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이 나섰으며, 진보 학계에서는 오수창 서울대 교수와 정태욱 인하대 법학과 교수가 논지를 폈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유와 평등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경제적으로 볼 때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두고 복지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를 말하는 데 있어 자유민주주의 이상 적합한 표현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역사교과서에 '독재'라는 표현을 제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독재에 대한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성취도 있었다"며 "박정희 시기는 강력한 독재 혹은 리더십을 통해 경제를 획기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으며 아울러 중산층의 폭을 넓혀 자유민주주의의 증진에도 이바지했다"고 덧붙였다.

김광동 원장도 "대한민국은 전체주의의 길을 가지 않았다. 이 역사가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며 "지난 60년간 한반도에서는 자유와 민주가 발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성공도 했다"면서 "역사적 기반이나 경험, 전체주의와의 경쟁으로 만든 자유와 민주가치라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했다.

그러나 지난 60년간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쉴 새 없이 연쇄적으로 경험하며 '압축성장'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유=경제적 자유'라는 등식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연대, 평등, 자유를 포괄하는 '민주주의'를 경제적 자유로 한정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태욱 교수는 "역사교과서의 기술 기준을 자유민주주의에 둘 것인가, 민주주의에 둘 것 인가는 국가의 정체성 문제를 결정한다"며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민주공화국에서 찾는 게 포괄적이고 역사적으로도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와 인권과 공존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경제적인 자유주의에 치우쳐 있다"며 "사회적 시장경쟁 질서도 없애자고 하는 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요구다. 자유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하는 역사교과서가 나온다면 현실에서의 역학관계와 맞물려 불행한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측면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오수창 서울대 교수도 자유민주주의가 분배와 평등을 포괄하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를 배제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한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한 개념"이라며 "자유민주주의는 합의된 개념이 아니어서 학생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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