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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겨울 추위에 더 마음시린 소외계층

다가온 겨울 추위에 더 마음시린 소외계층

올들어 서울에서 첫 얼음이 관측된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이곳 주민 최모(70)씨는 찬 바람이 들어오는 자신의 방 지붕 판자에 비닐을 덧씌우고 있었다.

최씨는 "어젯밤 추위 때문에 옷을 더 껴입고서야 잠이 들었다"며 "한 달에 20만원 남짓한 생활비로 사는데 난방용 석유까지 사면 굶어야 할 지경이다. 지원이 없으면 난방은 아예 못 한다"고 토로했다.

제대로 된 월동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서울의 쪽방촌 주민들과 역 일대 노숙인 등 소외계층 시민들에게는 이날 갑작스레 들이닥친 초겨울 추위가 더욱 매섭게 다가왔다.

◇전기장판으로 겨울 나는 쪽방촌 = 쪽방 500여 세대가 모여 있는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서는 방마다 주민들이 전기장판을 깐 방바닥에 얇은 담요를 두세 장씩 겹쳐 놓고 외풍을 견디고 있었다.

주민들은 "추운데 뭐 하고 있냐"는 질문을 서로 안부 인사 대신 건넸다. 도시가스나 연탄 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전기장판 한 장으로 겨울을 나야 할 형편이다.

창신동에 산 지 8년 가량 됐다는 박모(72)씨는 "전기장판이 있으니까 이 정도지, 외풍 때문에 방 공기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다. 장판만 끄면 바로 냉골"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막걸리가 난로고 이불"이라는 영등포역 인근 쪽방 주민 최모(45)씨는 기자의 손을 방바닥으로 끌어당기며 "뼈가 시릴 지경이다. 나는 젊으니 그나마 낫지 나이든 노인들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역 퇴거에 노숙인들 '어디로 가나' = 지난 8월 심야 시간대 퇴거 조치가 내려진 서울역 인근 지하차도에는 추위를 피해 찾아든 노숙인들이 한층 늘어났다.

6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장모(53)씨는 "예전에는 5~6명만 지하차도에서 잠을 잤는데 이번달 부터는 30~40명이 오고 있다"며 "어제는 50여명이 몰리는 바람에 잠자리 찾기도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장씨는 "이렇게 자리가 없으면 조만간 용산역이나 을지로 지하상가로 옮겨가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영등포역 인근 파출소 앞에서도 햇볕이 드는 곳을 찾은 6명의 노숙인들이 종이컵에 소주를 담아 마시며 술기운으로 추위를 달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몸 주위를 종이박스와 이불로 싸 바람을 피하던 한 노숙인은 "확실히 지난밤이 춥기는 하지만 아직 버틸 만 하다. 그러나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더 추워지면 역사 지하 계단으로 갈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한 코레일 관계자는 "역사 대합실 통로에 평소 100여명 정도가 차는데 올해는 서울역 노숙인들도 유입돼 인원이 20여명 가량 늘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날씨가 더 추워지면서 통로에서 머무는 노숙인들이 늘어날까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구룡마을 주민들 "동파 걱정 태산"= 지난 여름 근처 하천이 범람해 수해를 입은 강남구 구룡마을 비닐하우스에서는 방한용 비닐과 부직포가 찢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땅의 95%가 사유지로 수도관 매설이 여의치 않은 이곳에서는 수도관이 주택 천정으로 연결돼 있어 동파 우려가 큰 상황이다.

주민 김모(69)씨는 "수도관을 바깥에 만들어 놓아 겨울이면 늘 동파로 고생"이라며 "동파를 막으려면 계속 물을 틀어놓아야 하는 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연탄과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는 이곳 주민들도 낙후된 전기 시설로 인해 누전과 감전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우려스러워했다.

구룡마을 주민 이모(81.여)씨는 "그나마 들어오는 전기도 누전 위험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없다"며 "오후 한때 잠시 사용하는 것이 전부"라고 전했다.

유귀범(62) 주민자치회장은 "노후화된 외선 보수를 한국전력에 의뢰했는데 아직 답이 없다"며 근심어린 기색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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