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출범 당시 시민단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생소했다. 이전에도 시민단체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관변단체들만 활개치던 때였다. 경제정의실천이란 말도 파격적이었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 검은돈이 사라지는 사회,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상 등의 구호와 선언은 신선하고 충격이었다. 관변단체들도 구호는 거창했지만 경실련은 이들과 달랐다. 시민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곧잘 시민단체를 화제로 삼았다.
시민단체는 기존 체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체제 안의 모순과 부조리를 개혁하고자 했다. 폭력도 사양했다. 잘못만 지적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했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려는 모습에 시민들은 물론 정부도 호감을 보냈다. 이후 시민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시민단체들이 많아지면서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시민단체들의 최대 고민은 돈이었다. 상근 직원 월급도 줘야 하고 회보 발행이나 자료 수집 등 활동을 위해선 경비가 필요했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개인과 기업의 후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지원금과 후원금이 늘자 이번에는 불어난 돈이 발목을 잡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월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강 교수는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선적이고 뻔뻔해야 하는데 '박원순은 일단 정치인으로서의 탁월한 자질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속된 말로 시민을 인질이나 빽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협찬 인생은 그의 독특한 권력 향유, 쟁취 방식의 핵심을 구성한다며 대기업 협찬을 받고 그 사실을 밝혔으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경이롭다'고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은 요동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힘이 세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 진리가 됐다. 시민의 힘이 세지면 당연히 시민단체들의 힘도 커진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양면이 있다. 시민의 시대, 시민단체의 얼굴과 갈 길은 어디일까.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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