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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가출 / 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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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 채가 한나절 만에 사라졌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집은 마당 가득 흩어진 스티로폼 더미와 나뒹구는 장롱과 싱크대 수납장만 남겨놓고 사라져버렸다.

그건 마치, 집이 자진해서 스티로폼 내의를 벗어둔 채, 나동그라진 신발들만 남겨둔 채,

벌떡 일어나 가출해 버린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십오 년 전 가출한 아우의 옷가지들을 이사 때마다 갖고 다니신다.

아내는 천덕꾸러기 옷 보따리를 유난히 지겨워하지만, 끝까지 어머니 고집을 꺾을 수는 없을 거다.

가출한 집은 어디서 잘 지내는 건지, 밥은 잘 챙겨 먹는 건지, 철 바뀌면 갈아입을 옷가지나 있는 건지, 나는 오늘 멀쩡히 잘 있다가 가출해 버린 집을 보며,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에 엉뚱한 측은지심을 덧대 보는 거다.

마당 가득, 벗어놓은 내의 같은 스티로폼 널려 있다.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햇살 낭자하다.

속절없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겠죠. 포클레인이 다녀가면 한나절 만에 집 한 채가 사라지죠. 학교 갔다오니 살던 집이 없어졌던 경험 있으신가요? 스티로폼 부스러기만 남기고 가출한 집.

추억과 기억의 차이는 그리움의 유무라지요. 가출한 집이나 가출한 아우는 모두 추억의 이름, 그리움의 이름이죠. 어떻게 함께했던 시간을 잊을 수 있겠어요. 그처럼 가출한 아우를 생각해 십오 년째 이사 때마다 아우의 남루한 옷 보따리를 챙기고 또 챙기시는 어머니.

가출한 집은 가출한 아우의 의인화된 동일성. 추워오는데 그들 잘 있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속절없는 시간들 속절없는 인생들. 시의 편편마다 삶의 측은지심을 덧대는 이 시인의 시적 방식은 아픔을 넘어선 세상에의 연민 그리고 흥건한 사랑, 정말 낭자하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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