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수도권의 자본 집중화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기업과 돈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면서 지방 경제의 황폐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상위 1%가 부의 99%를 차지하는 모순을 깨기 위한 '반월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미국보다 한국의 모순은 더욱 심각하다. 계층 간 부의 편중뿐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는 탓이다. 지역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해치고 있는 자본의 수도권 집중화 폐해와 대안을 살펴본다.
한국의 돈줄은 서울에 본사를 둔 몇몇 시중은행이 쥐고 있다. 경제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지만 지역에 기반한 지방은행은 씨가 말라가고 있다. 상당수 지방은행이 사실상 사라졌고 나머지 은행들도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웃 일본을 비롯한 금융선진국은 지방은행의 비중이 컸다. 지방은행들은 철저히 지역에 뿌리를 내리며 지역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었다.
◆서울로 몰리는 지방자금
실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금융 부문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방금융을 상대적 낙후 상태로 내몰았다. 실제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금융그룹들은 지방금융을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 수도권과 지척인 충청, 강원지역엔 이미 지역은행이 사라졌다. 대전'충남의 충청은행은 1998년 하나은행에, 충북의 맹주 충북은행 역시 1999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강원은행도 같은 해 조흥은행에 합병됐다.
지방은행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대구은행을 비롯해 부산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이 전부다. 경남은행(우리금융지주)과 제주은행(신한금융지주)이 이름을 갖고 있긴 하지만 각각 대형금융그룹의 자회사로 흡수됐다.
대구경북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지역 대표은행인 대구은행의 수신 점유율은 대구에서는 45%지만 경북에서는 21%에 그치고 있다. 대구경북 통틀어 지역은행의 지역 수신은 35% 수준. 대구경북에서 흘린 땀의 결실이 서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대구지원에 따르면 대구경북에는 역외 은행 16곳, 증권사 27곳이 영업을 하고 있고 생명보험사 20곳, 손해보험사 15곳, 카드 및 여신전문회사 15곳 등 역외 금융회사들이 지역 내에서 성업 중이다. 이는 금융연관비율(FIR=전 금융기관 여'수신액 합계액/GRDP)로 뚜렷이 나타난다. 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이 지역금융회사로 얼마나 유입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금융연관비율은 2009년 말 기준 수도권이 4.1로 지방 평균 2.0보다 2배 정도 높았다. 이 중 대구는 3.5, 경북은 1.4였다. 경북의 경우 지방 평균보다도 낮은 수치다. 서울 5.7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의 차이다. 지방에서 생산한 재화가 서울로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다. 저조한 금융연관비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외 은행과 증권사 등이 지역 내 자금의 70% 가까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선진금융, 지역은행의 힘
선진금융을 자랑하는 국가의 경우 지방은행의 힘이 막강했다.
미국의 경우 올 6월 말 기준 자산규모 10억달러 미만의 지방은행(community bank)이 6천846개(FDIC가맹은행 기준)에 이른다. 전체 은행 수 7천513개의 91.1%로 압도적 수치다. 미국 내 4위와 7위의 네이션스뱅크(Nations Bank)와 뱅크원(BancOne Corp) 역시 지역을 발판으로 성장한 지역 우량은행이다.
일본에서도 시중은행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지역 금융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지방은행이 106개(지방은행 64개, 제2 지방은행 42개)나 된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에서도 작지만 경쟁력 있는 지방은행들이 미처 시중 대형은행들이 손댈 수 없는 틈새시장을 기반으로 착실히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이들 지방은행의 공통점은 규모는 작지만 각 지역 금융시장에서 높은 충성도를 지닌 고객 기반과 30∼40%에 달하는 최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지방은행들은 '지역밀착형금융'을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해하고 있었다. 교토은행의 경우 올 9월부터 지역밀착금융추진실을 만들었다. 비슷한 성격의 업무를 8년 전부터 해오고 있었지만 지역밀착의 중요성을 공고히 한다는 취지로 법인부 내에 14명의 직원을 두고 ▷벤처펀드 투자 ▷지방자치단체, 대학 등과 연계한 사업 지원 ▷교토비즈니스 상담소 운영 등 지역과 관련된 사업만 전담하고 있다. 교토은행 측은 "우리도 기업이다. 하지만 지역에 뿌리를 둔 금융회사"라며 "지역과 유대 관계를 견고히 하기 위한 비즈니스의 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교토은행은 지자체와 지역 대학의 장점을 자신들의 장점과 잘 버무리는 솜씨를 보였다. 기업이 창업이나 신사업을 위해 돈이 필요할 경우 사업 컨설팅을 반드시 한다고 했다. 역으로 사업을 제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장 분야로 꼽히는 의료'복지 분야, 환경 분야에 대해서는 지역활성화 융자 프로그램을 가동해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 컨설팅을 실시한다는 것. 교토은행 관계자는 "기업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힘들다. 그래서 비즈니스 플랜을 같이 만든다. 컨설팅 비용은 은행 측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또 "지역 기업과 소상공인의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이런 성향은 대출금잔고에서 지역활성화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교토은행의 대출금잔고는 3조8천273억엔, 이 중 지역활성화 대출은 3조5천508억엔이었다. 대출의 90% 이상이 지역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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