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지역의 삶터와 일터가 황폐화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치, 경제, 문화, 인재 등 모든 영역의 자원과 투자가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은 '결정권'도 '세원'도 '인재'도 없다. 이러다간 지방은 수도권의 '종속물'로 수도권을 위한 '하청기지'로 전락할 판이다.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서울시는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위해 내년도 학교급식 예산을 630억원 증액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는 1천72억원으로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의회에서도 큰 반발 없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대구의 경우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면 200여억원이 소요된다. 시민사회단체가 전면 무상급식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열악한 재정형편 때문에 내년 급식예산으로 85억원을 잡았다. 올해 28억원에서 3배 늘리기 위해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쥐어짜야 했다.
서울의 내년 예산은 21조8천억원으로 부산(7조9천억원), 대구(5조4천억원), 인천(6조5천억원), 울산(2조4천억원), 광주(2조3천억원) 등 나머지 광역시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지방은 총체적 위기에 몰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이후 2008년까지 8년간 서울, 경기, 인천 등지에서는 180여만 명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창출된 일자리의 80%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수도권에서는 같은 기간 40만 명의 취업자가 증가하는 데 그쳤고 부산'경북 등 5개 시'도에서는 일자리가 되레 줄었다.
전체 일자리 중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6%에서 2008년 9월 말 현재 49%에 육박한 뒤 2010년 이후 절반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수도권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의 공장증설을 용인해주고 있다.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도 심화되고 있다. 작년에 재벌닷컴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기준으로 기업의 시가 총액 84.1%, 기업수는 71.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연구소 숫자도 서울,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5년간 기업연구소 증감추이를 분석한 결과 수도권에 67.8%가 몰려 있는 반면 제조업 비중이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영남권에 있는 연구소는 16.4%에 불과했다.
지방분권운동본부 등에 따르면 수도권의 지역총생산(GRDP) 비중은 1970년 37%에서 1999년 46%로 증가하고 인구비중도 1970년 28.3%에서 2000년 46.3%로 증가하는 등 서울, 경기, 인천 3개 시'도가 우리나라 경제의 절반을 좌우하고 있을 정도로 특정 지역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비대화는 다른 지역의 기업과 인구, 자본의 유입을 통한 것이어서 지방은 나날이 경제가 피폐해지고, 인재와 자본이 떠나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는 "지금 지방은 총체적 위기다. 조세의 대부분이 국세로 징수되고 있고, 교육과 취업, 문화의 향유기회가 모두 서울에 집중돼 있다"며 "이는 지방의 위기이자 곧바로 국가의 위기로 연결되기 때문에 지방을 살리기 위한 사회개조운동, 지방경쟁력 강화운동이 전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 분권 공약 구호에 그쳐
2002년 16대 대선 직전 전국에서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당시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지방분권 대국민 협약'에 서명하면서 지방분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 공약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물론 지역균형발전법, 지방분권촉진법 제정 등을 시도하고 일부 정부업무를 지방에 이양했지만 시늉에 그쳤다.
이창용 지방분권 대구경북상임대표는 "2000년대 들어 분권운동이 불붙었지만 우리나라의 핵심 정책과제로 채택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며 "진정한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선 지방이 단결하고 혁명적인 목소리를 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방분권 전문가들은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선 개헌을 통한 장기전략과 재정분권 등 단기전략을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전 한국지방재정학회장)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지방분권의 좋은 지렛대다. 정부로 하여금 지방분권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지방민에 의한 강력한 요구가 따라야 한다"며 "일차적으로 지자체가 상당 수준의 과세자치권을 비롯한 세입 자율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병태 전 외국어대 총장은 "중앙 정부는 생태적으로 분권을 거부하고 대기업과 수도권도 지역균형발전에 소극적인 만큼 개헌을 통한 분권, 준연방제적 행정구역 개편없이는 지방이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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